새들끼리 봉황의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를 마련했다.

그 자리에 박쥐만 빠졌다.

봉황이 꾸짖자 박쥐는 "나는 네 발 가진 짐승이므로 새와는 관계가 없다"고
발뺌했다.

그 뒤, 기린의 생일잔치가 벌여져 네 발 가진 짐승이 다 모였는데도 박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기린이 꾸짖자 "나는 날개가 있는데 네 발 짐승의 잔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딱 잡아뗐다.

그 이후 박쥐는 날짐승과 길짐승 모두에게 미움을 사서 어느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낮에는 동굴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만 활동하게 됐다.

조선후기 실학자 홍만종은 "순오지"에서 이처럼 박쥐라는 동물의 생태를
재미있게 설명해 놓았다.

박쥐는 포유류 가운데 새처럼 날 수 있는 유일한 날짐승이다.

약 6천2백만년전 두더지의 일종이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아먹기 위해 진화를
시작, 지금처럼 긴 앞다리가 날개로 변했다.

눈은 색맹이지만 비상한 청력을 갖고 있다.

입이나 코로 1초에 최고 2백번 정도의 인간이 들을 수 없는 고주파를 내보내
목표물에 닿아 되돌아 오는 반사파로 먹이의 종류와 거리까지 단숨에 알아
낸다.

현재 지구상에는 날개폭 1.5m에서 1.5mm에 이르는 크고 작은 박쥐 8백47종이
서식하고 있고 우리나라에는 28종의 박쥐가 살고 있다.

예부터 서양에서는 박쥐가 악령이나 유령의 상징으로 멀리하는 동물이었다.

그러나 한.중.일 등 동양에서 박쥐는 장수 부귀 강령 등 오복의 상징이었다.

부적 회화 공예품 가구장식에 박쥐문양은 그런 복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또 흰 박쥐는 천년 묵은 것이라 해서 잡아먹으면 장수한다고 믿었다.

붉은 박쥐(황금박쥐)가 나타나면 특별히 좋은 징조라고해서 사악한 기운을
막고 큰 복의 징표라고 믿었다.

지금도 중국식당에 붉은 글씨로 쓴 복자를 거꾸로 매달아 놓는 것은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 있듯이 복이 달려 있기를 비는 뜻이다.

세계적 희귀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멸종야생동물 1호인 황금박쥐의
집단서식지가 최근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호가 급선무라는 생각이 앞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