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건축물을 미술작품처럼 보고 음악처럼 들으라 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예수무덤교회, 러시아의
바실리성당, 인도의 타지마할, 중국의 만리장성, 그리고 우리의 불국사...
이들 건축물은 몇가지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
무형적으론 이들 밀레니엄 건축물은 당대 삶의 터전과 역사의 산물로서뿐
아니라 시공을 초월해 수천 수백년동안 후손들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또한 일상적 수준을 뛰어넘어 완벽한 기하학적 형식을 이루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짓기전 수백개의 크고 작은 피라미드를
만드는 실험을 하였고 개펄위에 선 성마르코성당 아래엔 건물보다 더 큰
파일이 거대한 인공섬을 이룬다.
그리고 이들 건축물은 그 땅에서 난 재료로 만들어졌다.
그 지방의 흙으로 구운 벽돌과 건물이 들어설 지하의 암반을 잘라 만든
돌로 지어진 것들이다.
철저히 그 땅과 하나가 돼있는 건축물이므로 어떠한 자연 재해에도 흔들리지
않고 수많은 세월의 풍상을 견뎌낸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지을 때보다 더한 지극 정성으로 유지 보수해 왔다는
점이다.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은 끊임없이 부자재를 갈아끼워 여러번 다시 지은
셈이 됐으며 수차례 지진을 이겨낸 러시아 바실리사원은 수십차례의 증.개축
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예루살렘의 예수무덤교회는 십자군전쟁 이후에도 수없이 반복된 파괴
속에서 원형을 이어왔다.
프라하의 카를 다리는 한강 열아홉개 대교의 유지 관리인원보다 더 많은
기술자들이 지키고 있다.
건축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그 안에는 시대정신과 문화가 농축돼 있다.
자본주의가 풍미한 20세기 건축디자인의 화두가 "마천루(skyscraper)"
였다면 21세기 건축디자인은 인간과 환경이 공생하는 생태와 정보화로
모아진다.
현대의 공룡이라 불리는 거대도시는 1930년대 미국 뉴욕으로 상징되는,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들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졌다.
1931년에 완공된 1백2층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부터 1970년에 지어진
1백10층짜리 쌍둥이빌딩 월드 트레이드센터, 96년 완공된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타워 등이 대표적인 예.
이러한 건물들은 "비인간적인 환경" "절망의 바벨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대한 반동으로 90년대 들어 인간다운 공간과 환경에 친근한 건물을
위한 건축디자인이 적극 시도되고 있다.
마천루에 대한 반성으로 나타나는 뉴 트렌드(New Trend)인 셈이다.
이같은 제안은 수만명 인구가 정원과 예술작품이 있는 공간을 통해 공동체
를 실감하며 같은 빌딩에 드나드는 사람들끼리 정서적 공감대를 갖자는
것이다.
현존하는 세계 4대 건축가중 한명으로 꼽히는 I M 페이가 지난 91년 설계한
홍콩의 차이나뱅크 빌딩은 "90년대 가장 혁신적인 건축물"이라는 평을
듣는다.
마치 조각작품을 들여다보듯 70층의 거대건물이 지닌 알루미늄과 유리의
기하학적 외관이 경쾌하다는 찬사를 들었다.
더 큰 장점은 이 건물의 환경봉사 기능이었다.
도로와 맞닿은 빌딩 주변을 정원과 폭포로 감싸 도시의 소음을 막아주면서
3개 층을 공용 공간으로 활용, 사람들을 건물속으로 불러들였다.
최근에는 아예 초고층 빌딩을 피해 시골풍의 사무실을 갖자는 움직임도
건물디자인의 미래상으로 이미 실천에 들어갔다.
90년대초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근교에 세워진 나이키 본사를 비롯해
몇몇 기업체들이 4,5층짜리 별장같은 분위기의 사무실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자연에 친근한 디자인을 통해 인간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새로운
오피스 빌딩으로 주목받고 있다.
땅이 넓은 미국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앞으로 화상회의와 재택근무가
일반화될 정보통신시대에도 과연 거대 사무실이 필요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이와함께 문화의 장으로서 건축물이 하는 역할도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도이체방크 건물은 거대한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그동안 건물디자인의 한 부분으로 미술품 설치에 주력해 왔는데 이것이
쌓여 현대미술 작품의 엄청난 컬렉션이 됐다는 것.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센터 빌딩 소개에는 빠지지 않고 이곳에 알렉산더
칼더, 후안 미로, 프리츠 쿠닝의 조각작품이 있다는 것이 명시돼 있다.
인간다운 환경을 위한 노력이 공공서비스 공간의 제공과 함께 지금 세계
대도시 건축물의 의무사항이 되고 있다.
흔히 마천루라고 불려 왔던 세계의 초고층 대형빌딩들이 지난 10여년 사이
생태적으로, 그리고 대중을 위한 봉사의 기능으로 바뀐 것은 커다란 변혁
이다.
이같은 신조류는 산업화에서 정보화로의 시대 전환을 의미한다.
또한 이제까지의 건축행위가 다분히 반자연적이었다면 이제부터의 건축은
자연과 함께 하는 생태적인 것이리라는 걸 예고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근래 들어 1백층 규모의 초고층 빌딩 건축이 시도되고 있다.
세계 건축사 조류와 다소 떨어진 경향이지만 자본주의 유입과 산업화의
전개가 선진국에 비해 늦었던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땅에 지어질 건축물이 인간적이다 비인간적이다, 자연파괴적
이다 아니면 생태적이다 라는 논쟁을 떠나 우리의 건축계가 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하루빨리 극복해야할 것이 만연돼 있는 "카피(copy)문화"다.
몇몇 유명 건축물로 알려진 것들이 실제로는 외국 건축가의 원작을 복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또한 우리의 독자성과 한국적 정서를 디자인에 담아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문화의 세기로 불리는 21세기를 얼마 앞둔 위기의식의 발로다.
이를 위해선 성장 위주의 논리에 밀려 단순 기능으로 추락한 건축, 그래서
건축비를 무조건 깎으려는 우리 풍토도 바뀌어야 한다.
일부나마 우리 건축의 현주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하는 현상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회색 콘크리트 아파트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나무와 흙을 재료로 한 전통
양식의 단독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뉴 트렌드의 일환이다.
또한 새로운 세기에 처음 열리는 2002년 월드컵 상암경기장이 소반 등
우리의 문양을 바탕으로 설계된 것도 위안거리다.
21세기의 장이 열리는 시점에서 올해를 "건축문화의 해"로 지정한 것은
우리 건축미래의 가능성을 더욱 밝게 한다.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줄 "밀레니엄 건축"이 태동하는 계기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 방형국 기자 bigjob@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