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자해지"

정부가 "반도체 빅딜"을 전경련과 해당 기업에 넘긴 이유다.

기업끼리 합치려고 하다가 잘 안된만큼 마무리도 기업들이 책임지라는
주문이다.

일리있는 소리다.

5대그룹은 지난 8월 "알아서" 중복.과잉업종을 정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곤 곧바로 반도체를 포함한 7개업종에 대한 사업구조조정협상을 벌였다.

6개 업종 통합계획이 마련됐고 준비작업을 진행중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한 적은 없다.

김우중 전경련회장 주재로 5대그룹 회장이 만날 때 정부 각료가 참석한
적은 한번도 없다.

적어도 표면적으론 정부가 개입한 흔적이 없다.

그렇다면 정부는 "결자"가 아닌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지난해 10월초 전경련이 1차 협상 결과를 발표하자 "경영주체가 불명확하다"
며 재협상을 요구한 건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이었다.

현대와 LG가 지분율을 합의하지 못하자 다시 11월말까지 경영주체를 가리
도록 독촉한 것은 금감위였다.

뿐만 아니다.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할 수도 있다며 으름장을 놓은 것도 금감위였다.

정부가 마감 시한과 "답안 양식"을 정했다.

그래놓고도 지난해 12월25일 LG반도체가 아서 디 리틀(ADL)의 평가결과에
반발하자 정부는 "전경련이 알아서 하라"며 발을 뺐다.

지난 4일 정몽헌 현대 회장과 구본무 LG회장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만났
지만 별 소득없이 헤어졌다.

이익 추구가 존재 이유인 기업에 "자율적으로" 양보할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전경련이 중재를 한다고는 하나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전경련은 경제단체다.

주요 회원사인 현대와 LG에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

정부는 반도체산업을 협상테이블에 꺼내놓은 "결자"중 하나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발전계획이 있다면 떳떳이 밝혀가며 업체를 설득해야
한다.

거꾸로 대안이 없다면 업체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뛰어다녀야 할 것이다.

이도저도 아니면 "없던 일"로 하든지...

"뒤탈"이 두려워 발을 빼고 있는 듯한 행동은 적어도 피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가 할 일이고 "결자"가 "해지"할 일이다.

권영설 < 산업1부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