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컴퓨터프로그래머가 영어와 러시아어의 기초단어를 입력시킨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음(Spirit)은 간절하나 몸(flesh)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말을
번역하도록 지시했다.

그랬더니 "술은 멀쩡하지만 고기는 썩어버렸다"는 얼토당토 않은 대답이
나왔다.

"Spirit"에는 "술", "flesh"에는 "고기"란 또다른 뜻이 있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기억능력과 번개같은 속도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컴퓨터도 이처럼 한계는 있다.

인간이 만들어 입력시킨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하는 탓이다.

오늘날 인간이 벌이는 갖가지 활동중 컴퓨터가 개재되지 않거나 그것의
제어를 받지않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만약 컴퓨터를 갑자기 못쓰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 결과는 정보화사회인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에서조차 대혼란으로 나타날 것이 뻔하다.

새해 첫날 스웨덴의 몇몇 고항에서 컴퓨터 오작동이 발생, 임시여권 발급이
중지되는 바람에 큰 소란이 빚어졌다는 소식이다.

소프트웨어가 99년을 "작동중지" "파일끝"으로 인식하도록 잘못돼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몇해전부터 컴퓨터가 2000년을 1900년으로 오인해 사회시스템이 마비될
것이라는 "밀레니엄 버그(Y2K 오류,연도인식 오류)"를 걱정해 오면서 90년
초부터 그 문제해결에 힘을 쏟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처럼 이번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교통시스템의 잘못된 작동으로 철도 비행기 선박운행이 중지되는 내란이
일어나고 빌딩시설은 엉망이 되고 공장의 자동화기계들이 오작동을 일으켜
생산활동이 마비되는 등 밀레니엄 버그를 걱정하는 미국사람들은 섬이나
산골로 피난할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느긋하기만 하다.

지난해 뒤늦게 구성된 컴퓨터2000년(Y2K)문제 대책협의회를 구성하기는
했지만 기업 관공서의 밀레니엄 버그 해결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현황파악이나 제대로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시간과 예산이 없다지만 "금년상반기까지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은 이미
늦었다"는 외국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우리가 끄지 않으면 누가 대신해 줄것인지 묻고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