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승희 < 한국경제연구원장 >

한국경제가 IMF(국제통화기금)체제를 조기에 극복하고 잠재성장 궤도로
재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거시경제의 안정을 조기에 달성하고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며, 이를 바탕으로 국민의 창의가 극대화되는 선진경제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정책안정"을 통한 거시경제운영

현재 우리경제는 지난 1년여 동안의 급속한 경제규모 축소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와있다.

지난해 하반기를 거치면서 경제의 하강 속도가 크게 완화되고 있으며
연중에는 적어도 경기의 저점을 통과하리라는 기대섞인 전망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경기의 조기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내수부양정책을
쓸 것이라는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경제가 완만하지만 자연반등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지나친
부양조치는 자칫하면 부작용을 수반할 우려가 없지 않다.

지속되는 금융경색속에서 통화나 금리동향이 실물경제의 흐름을 제대로
짚어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선의 대응은 경기의 회복을 위한 정책조작
보다는 중기적 시각에서 통화.재정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정책의
안정"을 도모하는 일이다.

현재 환율, 금리와 증권시장의 동향등을 감안할때 유동성은 대체로 적절한
수준이 아닌가 싶다.

때문에 추가적인 금융확대 조치보다는 통화공급 및 금리수준을 가능한한
지금의 수준으로 안정시키는 가운데 금융경색의 해소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바림직하다.

<>제도와 시장압력에 의한 구조조정

그동안 구조조정은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바와 같이 관치경제 폐습에서
야기된 부실을 관치에 의해 걷어내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오히려 관치가 더 강화될 수 밖에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을 여러 가지 논리로 견강부회하여 시장원리에 따랐다거나 시장이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정당화하려할 필요는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비상국면이 지난 시점에서 조속히 시장원리에
따른 구조조정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기존 제도의 개혁과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통해
제도와 시장경쟁 압력에 의해 은행과 기업의 자발적 구조조정 노력을
유도해 나가야 한다.

<>관치금융 해소를 통한 은행구조조정

진정한 의미의 금융구조조정은 관치금융 해소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기준 8%를 맞춰 주고, M&A(기업인수합병)를
통해 대형화시켜 놓는다고 해서 은행의 행태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은행부문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는 관치에 의한 은행경영권 전횡에서
연유한다.

이를 고치지 않고서 은행이 채권자로서 기업에 대한 대출심사기능을 통해
자본주의의 불침번 노릇을 해내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은행산업의 구조조정은 우선 은행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여 주어진
소유제한하에서라도 주주권이 제대로 행사되도록 하고 주주총회가
명실상부하게 경영권을 창출해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주권이 적절히 보호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내외로부터 은행산업에
신규 자본이 유입되리라거나, 이에 따라서 민간 경영 마인드에 의한
경영관행이 정착되리라고 기대해서도 안된다.

이와 동시에 은행산업에 대한 대내외로부터의 진입을 보다 확대하여
경쟁압력에 의한 구조조정 노력을 유도해 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형식적으로만 적용되어온 동일인여신한도규제 등 자산
건전성 감독은 보다 엄격히 집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시장압력에 의한 기업구조조정

그동안의 대기업 구조조정은 사실상 제도나 시장압력보다도 인치와 명령에
의해 추진된 측면이 적지 않았다.

대외신인도의 조기 극복이라는 사안의 긴박성 때문에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명령에 의한 구조조정은 한시적 효과 밖에는 가지지
못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기업이 처하고 있는 유인구조를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고서는 항구적인
기업변신을 유도해 낼 수 없다.

과거의 대기업 개혁 실패가 바로 제도와 시장압력에 의한 항구적 구조조정
체제를 정착시키지 못한데서 연유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민간기업의 경영행태를 규율하는 기업지배체제는
상품시장, 은행 등 간접금융시장, 주식시장을 통한 시장규율방식과 그룹
기조실이나 지주회사제도 그리고 이사회제도와 같은 기업내부의 통제조직에
의한 경영자 견제방식 등이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을 항구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업규율체제가
유기적으로 잘 작동하도록 관련제도를 체계적으로 정비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우선 국내시장의 대내외 개방을 조속히 완결하여 어느 기업도 독과점적
지위를 향유할 수 없도록 하여야 한다.

국내산업부문에의 진입제한을 완전 철폐하고 외국기업의 국내시장 진입을
촉진시켜 국내경제의 경쟁도를 항구적으로 높여야만 대기업들도 정부의
신호가 아니라 시장으로부터의 경쟁압력에 따라 경쟁력 향상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관치금융 해소를 통해 은행이 기업에 대한 채권자로서의 감시기능을
제대로 수행해야 기업들의 투자행태가 보다 건전해 질 것이다.

최근 정부주도라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구조조정에 있어서
은행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음은 주목할만한 변화이다.

그리고 주식시장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상반기에 적대적 M&A의 완전허용과
소액주주의 권한 강화등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기업경영 견제제도를
도입했으며, 사외이사제도의 활성화를 통한 기업내부로 부터의 경영감시
체제도 크게 개선했다.

때문에 이제는 이러한 새로운 제도가 보다 잘 작동하도록 보완조치를
강구해 나가야 한다.

지난 1년 동안의 구조조정과정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은행도
대기업도 망할 수 있으며 또한 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은행.기업 모두에게 새로운 열린경쟁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시장경쟁 압력에 의한 규율체제를 강화하는 제도만 제대로
정착시키고 엄격히 시행한다면 은행.기업 모두 스스로 경쟁력 향상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제 명령에 의한 구조조정에서 제도와 시장압력에 의한 구조조정의
시대를 열어야 할 때이다.

<>경쟁압력을 통한 공공부문 개혁

정치권, 관료부문도 과감히 열린 경쟁에 노출되어야 한다.

정치권과 관료사회가 각종 진입제한의 보호벽속에서 누리고 있는 특권과
여기서 나오는 독점지대(rent)를 하루속히 제거하여야만 공공부문의 대국민
서비스가 향상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들 부문에의 진입장벽을 완전히 철폐하여 밖으로부터의
경쟁에 철저히 노출시켜야만 한다.

정치시장에 대한 진입비용을 낮추고, 관료제도를 개혁하여 모든 능력있는
민간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기존 정치인, 관료들이 끊임없이
외부로부터의 감시와 능력의 재검증과정에 노출되도록 하여야 한다.

<>지적자본이 성장의 원천

한편 21세기 우리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이제 성장원천을
"지적자본(intellectual capital)"에서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국민의 정부는 지식기반산업의 발전을 모토로 내걸고 있는데 이러한
방향설정은 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지적자본에 의한 성장은 과거의 산업정책과 같은 "단순지원"
방식으로 달성되지는 않는다.

지적자본 축적을 위해서는 지적자본이 높은 보상을 받는 사회경제적
제도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요즘처럼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고급 연구인력이 경시되고, 지적재산에
대한 보호가 미흡한 현재의 체제로는 아무리 목소리 높여 지식산업의
육성을 소리쳐도 별 효과는 없을 것이다.

철저한 성과주의에 입각한 보수.승진체계를 정착시켜 지식경쟁을
촉진시키고 철저한 지적재산권 보호체제를 완비함으로써, "지적자본가와
지적재산"이 융숭한 대접을 받는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무위자연의 자생적 시장질서 확립

이제 정부는 진정으로 시장경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자생적 시장경제질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위자연의 철학을 설파한
노자의 도덕경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천하를 억지로 취하고자 하는 자는 결국 그것을 얻지 못할 뿐이다. 천하는
신령한 기물이라 억지로 할 수가 없으니, 억지를 부리는 자는 실패할
것이요 잡는자는 놓칠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극심함을 버리고,
지나침을 버리고, 과분함을 버린다"(도덕경)

여기서 ''천하''를 ''경제''로 읽는다면 경제운영에 대한 많은 시사를 얻게
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