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을 양대 진영으로 분할한 가운데 상대방을 위협하던 핵무기의
위험은 그대로 남아 있다.
여기에다 인종과 민족분쟁이 가세해 지구는 오히려 들끓는 열전으로
휘말려들고 말았다.
이같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놓고 학문적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냉전논리 외에 어떤 원인들이 지구촌을 분쟁의 소용돌이로 빨아들이고
있는 것인가.
이와관련,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의 "문명 충돌론"은 냉전이후
세계 질서에 대한 설득력있는 접근방법을 제공해 주목받고 있다.
당초 학계에서는 냉전이후 급증한 분쟁 양상을 단순한 "힘의 공백현상"
으로만 받아들였으나 이런 논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되풀이되면서
일어났다.
헌팅턴 교수는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문명의 다양성이 표출됐고 이것이
분쟁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지구촌은 기독교 이슬람 유교 힌두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러시아등
대략 6~7개 문명권으로 나뉘어져 있고 이들이 단기간 내에 화해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는 "냉전이 끝나고 시장경제 논리가 전지구적으로 관철될 것이라는
생각은 각 문명권의 구조를 과소평가한 결과"라고 강조한다.
서구에서 내세우고 있는 "세계화" 역시 아직은 하나의 가설일 뿐이며
현실에서는 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냉전 이후 각 문명권간의 각축과 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이라고
그는 전망한다.
특히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간의 충돌을 예견하고 있다.
굳이 경쟁관계여서가 아니라 인식의 구조와 문명차이가 필연적으로 갈등을
일으키게 돼 있다는 것이다.
중동지역의 오랜 알력과 미국-이라크간의 대립등을 보면 이같은 분석은
더더욱 힘을 얻는다.
지난 93년 포린어페어즈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문명충돌론을 처음 제기했던
그의 시각은 이후 역사학계와 정치학계는 물론 현실정치를 다루는
전문가들에게도 폭넓은 이해의 공간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