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재 < 충남대 언어학과교수. 역학연구가
cjseong@hanbat.chungnam.ac.kr >

주역을 점서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혹자는 공자님이 그 경륜을 토로해놓은 5000년 역사의 철학서라고 한다.

일반인들의 관점에서 주역을 점치는 책이라 판단해도 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64괘중 하나를 얻어서 현재와 미래를 판단하는 잣대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우리는 점이라 표현하기 때문이다.

퇴계 선생의 죽음과 관련하여 그 시초점의 결과가 지산겸괘라는 것은
이러한 점법에서의 유명한 일화다.

겸괘의 괘사는 군자유종이다.

주역의 위치는 사서삼경의 가장 마지막이다.

이러한 위치는 주역이 가지고 있는 만만찮은 학문의 무게를 말해준다.

그 어렵다는 책들을 다 통독한 다음에야 비로소 손에 잡을 수 있는 은근한
중압감이다.

그러나 한학이나 중국어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주역을 읽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여기서 읽기의 의미는 보편적 의미에서의 해석을 의미한다.

주역이 어렵다는 이유는 그 행간에서 말하고 있는 바를 이해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점쟁이란 말을 상당히 싫어들 한다.

쟁이가 붙었기 때문이리라.

왜 낮춤의 의미가 강한 쟁이라는 말을 덧붙였을까.

입학이나 선거철, 그리고 요즘같은 경제적 불황기 등 급박한 인간사의
와중에서 판단과 결단이라는 낱말만큼 우리를 옥죄는 것은 없다.

이 대목에서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고 대리판단을 수행하는 점술가는 우리
인생행로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함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점쟁이다.

많은 수의 공부를 제대로 하신 술객들은 그래서 자신들을 역술가로 불러주길
좋아한다.

명리학자 혹은 상학자, 성명학자, 음양가, 그리고 오행가 등 다양한 명칭도
이의 변형이랄 수 있다.

사회의 급박한 면, 어두운 면에 편승해 힘든 사람들을 등치고 울리는
사이비 술객들은 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활인 역할을 해왔던 뜻있는 많은 선비들은
대접을 제대로 받아야 한다.

물론 옥석을 구분하는 것은 그들을 대하는 우리 선남선녀들의 몫이겠지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