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 연세대 석좌교수. 문학평론가 >

금융 위기의 심리적 공황속에서 맞이했던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6.25이후 최대의 위기라는 표현을 접하면서 우리 세대는 50년대의 악몽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파국 일보전에 그나마 이 정도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 같으니 불행중 다행이
라 아니할 수 없다.

1백50만명이 넘는 실업자,전례없는 다수의 노숙자, 본의 아닌 퇴직자, 막대
한 재산상의 피해자가 넘치는 세상을 두고 가닥이 잡혀간다는 말을 한다는
것이 송구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더 고약한 사태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솔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으니 불행중 다행이라는 심정이 되는 것이다.

97년초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게된 신인도평가기관 무디스는 한국에 대해
"트리플A"라는 최고 수준의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불과 7개월 후에 한국은 최하의 평가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

문외한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아니 전문가나 실무자도 별 수 없기 때문에 단기 자본의 유동앞에서 속수
무책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사태가 발생하고 난 후에 그럴줄 알았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우리의
심사만 뒤틀리게 할 뿐이다.

그렇게 잘 알고 앞일을 훤히 예측하고 있었다면 왜 그 흔한 데모 한번 안했
는지 의아해진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갖게되는 감개는 그 누구도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역사의 오페라 대사를 믿지 않는다"고 갈파한 알렉산드르 게르첸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역사의 불가측성을 인지한다는 것은 미래에 대해 절망하거나 일체의 미래
구상이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앞에서 겸손하고 냉철하자는 것을 뜻한다.

우리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은 국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지침서인 "공산당
선언"발표 1백주년이 되는 해였다.

따라서 98년은 "선언"발표 1백50주년이어서 유럽쪽에선 이 문서에 대한
다시 읽기가 활발하다.

에리 홉스봄 같은 역사가는 그 수사적 호소력을 상찬하면서 많은 오류에도
불구하고 지구적 규모로 팽창한 자본주의, 즉 "글로벌리제이션"의 무자비한
과정을 예측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언"의 중요성은 여전히 막중하다고 주장
한다.

그러나 홉스봄 같은 이는 소수파이고 대체로 호된 비판이 많다.

자본주의의 전지구화를 예측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환영하는 입장이었다고
비판한다.

아울러 계급간의 타협,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민족국가의 이해에 있어 두루
오류를 범했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여기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특히 문서 작성자들의 자유주의 이해의
편향성에 관한 비판이다.

"선언"은 소유자와 노동자 사이의 사회계약의 대두와 지구력을 예견하지
못했으며 부르주아의 이념을 계급적 이해관계를 은폐하는 가면이라고만 생각
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책임 강조, 공정, 약속이행, 실력주의 지향과 같은 부르주아
의 기본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원칙은 "도덕성이 결여된 기업의 자유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계급간의 타협을 정당화하고, 불만을 조율하고, 온건한 개혁을 지향하는
자기비판적 프로그램을 가진 사회를 가능케 하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국면이 문서에선 전혀 도외시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막강한 존속력의 밑바닥에는 개인의 책임 강조, 공정, 약속
이행, 실력주의 지향과 같은 부르주아의 덕목이 깔려있음을 재확인하게 한다.

우리 사회에 가장 결여돼 있는 것이 이러한 덕목이라고 생각할 때 경제
위기의 한 근원을 대한다는 느낌이 든다.

복합적인 사회경제적 현상을 몇몇 경제외적 요소로 설명한다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IMF사태 이후 격증하고 있는 각종 사기행위, 친자식이나 자신의
신체훼손에 이르는 기상천외한 가혹행위 등을 대하면서 기본적 인간 덕목의
황폐화에 전율을 금할 수 없다.

우리 사이에서 절실히 요망되는 것은 몇몇 속죄양을 놓고 분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적 차원의 인간회복 운동이 아닌가 한다.

50년대에는 우리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두고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기대할 수
없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번엔 마르크스가 간과했던 시민계급 덕목의 내면화없이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의식화하고 대처해야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