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포실업의 이영로 사장(54)은 요즘 문방구에서 산 현금출납장을 다시 쓴다.

이 출납장의 앞부분엔 입금과 출금을 적고 뒷부분엔 자금입출 계획을
짜놨다.

경리사원이 처리하는 복식부기장과는 별도로 지난 연초부터 이 장부를
써왔다.

그는 "이 장부 덕분에 험난한 연쇄부도의 늪을 헤쳐 나올 수 있었다"며
닳아빠진 공책을 쓰다듬는다.

경기 의정부에서 장식장 등 점포장치물을 생산하는 그가 오래전에 쓰던
현금출납장을 다시 쓰기로 한 건 지난 2월8일 물품대금으로 받은 3천2백만원
짜리 어음이 부도나면서부터다.

받아놓은 어음의 금액을 "입금"으로 처리한 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그는 이때부터 현금만큼은 별도로 관리했다.

어음을 받더라도 결코 입금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외상매출금으로 그대로 뒀다.

때문에 외상을 줄이는데 더 힘쓰게 됐다.

다시 말해 현금을 주지 않으면 물건을 팔지 않았다.

또 현금잔고가 1천만원이하로 내려가지 않도록 했다.

1천만원이하로 내려가면 대금결제를 뒤로 미뤘다.

최근들어 이 사장처럼 "단식부기 형"으로 현금관리를 하는 중소기업들이
크게 늘었다.

연쇄부도로 인해 어음인수가 불가능해진데다 어음결제기간이 갈수록 장기화
돼 현금관리를 별도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은행합병 등으로 어음할인과 대출을 제날짜에 받을 수 없는 것도 이를
부채질했다.

현금관리를 잘못해 열흘 정도의 자금공백을 못이겨 부도를 낸 기업은
올들어서만 1천2백개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건자재를 납품하는 대전건재의 곽영훈 사장(47)은 이제 대차대조표상의
당기순이익은 대외전시용으로 전락했다"고 잘라말한다.

따라서 중소기업들은 이제 회계분석을 할 때 손익계산보다는 현금흐름
파악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

중소기업 M&A(인수합병)센터 등 M&A기관을 찾아오는 기업들도 상대기업의
대차대조표보단 현금자산에 더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기업회계의 맹점이 이렇게 드러나자 이스턴컨설팅 등 경영시스템 개발업체들
은 현금흐름을 즉시 파악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회계시스템을
개발, 상품화해 내기도 했다.

< 이치구 중소기업 전문기자 rh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