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나무밑둥 아래의 작은 개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디즈니가 어린이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또 하나의 동화를 내놓았다.

개미 발명가의 활약을 그린 "벅스라이프"(A Bug"s Life)이다.

"벌레의 인생"쯤으로 해석되는 철학적인 제목이 붙었지만 디즈니작품 특유의
밝은 웃음이 넘치는 영화다.

엉뚱한 발명으로 항상 어른들에게 핀잔을 듣지만 정의감과 사랑이 넘치는
개미 플릭이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디즈니가 95년의 "토이스토리" 이후 3년만에 내놓는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다.

이번에도 컴퓨터왕 스티브 잡스가 회장으로 있는 픽사에서 제작을 맡았다.

벅스라이프는 이미 드림웍스가 비슷한 내용에, 똑같은 디지털기법으로 만든
"개미"(AntZ)를 성공시킨 직후에 개봉돼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올여름 혜성의 지구충돌이란 소재로 드림웍스와 디즈니가 각각 "딥임팩트"와
"아마겟돈"으로 맞붙었던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싸움은 아마겟돈의 근소한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만화영화란 주력장르에서 맡붙은 만큼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다.

두작품 모두 개미를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분위기나 내용은 사뭇 다르다.

"개미"의 주인공 Z가 조직에 회의를 품고 정신과 상담까지 받는 어른개미
라면 "벅스라이프"의 플릭은 사랑에 갓 눈뜨고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많은
소년개미이다.

개미가 어둡고 음울한 페이소스를 갖고 있다면 벅스라이프는 밝고 화사하며
희망에 차있다.

영화는 늦가을 숲속에서 나무밑을 카메라가 자세히 들여다보며 시작된다.

이곳에선 개미들이 메뚜기에게 상납할 식량을 열심히 모으고 있다.

당장 겨울을 날 양식도 부족하지만 음식을 안바치면 힘센 메뚜기에게 혼쭐이
나니 어쩔 수 없다.

발명가 플릭은 대도시에서 용병을 불러와 메뚜기들과 싸울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가 데려온 벌레들은 프로가 아닌 벼룩써커스단의 엉터리 싸움꾼들.

동료들의 비웃음속에서도 플릭과 써커스벌레들은 나뭇잎으로 가짜새를
만들어 침략자들을 쫓아낼 준비를 한다.

영화는 동물이나 곤충에게서 이야기거리를 찾아내고 자유 희망 용기 등의
밝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디즈니식의 제작법으로 만들어졌다.

힘이 약하더라도 용기를 잃지않으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흔한 주제이지만
이것을 재미있게 포장해내는 실력은 "역시 디즈니"라는 감탄을 하게 만든다.

벅스라이프의 엉뚱한 벌레들은 1시간30분 동안 쉬지않고 관객을 웃고울린다.

그러나 끝은 아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NG장면 묶음이 방영된다.

이 영화에선 헐리우드 디지털기술이 크게 발전한 모습도 볼 수 있다.

헐리우드 디지털기술은 "곤충과 장난감"수준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새나 사람같은 생물 묘사는 무척 어색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미 하늘 나무 등 무생물은 사실에 가깝게 재현해내고 있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