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병과 국방첨단과학연구소(DARPA)는 정찰감시차량(RST-V)
개발업자로 록히드-마틴과 제너럴 다이나믹스를 선정했습니다.

13개월간의 설계작업 지원을 위해 양사에 각각 3백만달러가 지급되며
이 설계작업이 끝나면 국방성은 1단계 작업을 기초로 1개사를 선정,
36개월간의 2단계 제작 및 성능시험을 의뢰할 계획입니다.

2단계 작업에는 2천2백만 달러를 지급할 예정입니다"

최근 인터넷에 오른 DARPA와 미국 해병의 공동발표문이다.

DARPA와 해병은 두 회사가 제출한 RST-V 모형도 함께 공개했다.

사소한 것 같지만 무기기술에 관한 한 백지상태인 우리에겐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인천상공에서 폭발한 지대공 미사일, 무기거래에 따른 검은 돈 수수여부문제
등으로 시끄러웠던 뒤끝 이어서 더욱 그렇다.

RST-V개발을 위해 DARPA와 미국 해병은 이 부문 최고의 전문가를 팀장으로
지명한다.

이 팀장은 자기와 일할 또 다른 전문가들을 3년 내지 5년 계약직으로
채용한다.

이들 국방성 기술팀과 업자들은 한가족 공동운명체가 돼 모든 시간과
정력을 이 프로젝트에 쏟아 붓는다.

RST-V가 완성돼 실전에 배치되면 이들의 국방성과의 계약은 종료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국방성이 무기개발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기술적인 시행착오, 제조원가, 심지어는 에피소드까지도 파악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업자들이 농간을 부릴 여지가 전혀 없다.

"미국 국방성은 업자들에게 속지 않는다.

그리고 국민의 세금은 철저히 보호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얘기다.

그러나 우리네 실정은 전혀 다르다.

언제부턴가 우리에겐 무기구입과 뇌물수수를 동일시하는 연상작용이
자리잡고 있다.

무기구매에는 의례히 검은 뒷거래가 따른 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이 보다 더 큰 문제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전문가 부재와 이에따른 무기기술평가 안목부족에 따른 바가지와
세금누수 구멍이 얼마나 큰지 알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뇌물은 이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한데도.

보통 사람들에겐 자동차조차도 제대로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미사일 통신장비 항공기등 인류가 고안해 낼 수 있는 최첨단의
"기술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무기를 제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무기를 다루는 사람들의 얘기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대로 된 가격평가(pricing)까지 요구하고 있다.

워싱턴 국방성주변엔 컨설팅회사들이 많다.

기술이 없어도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열려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 국방부 예산과 문화엔 컨설팅비용이라는 항목이 끼어 들
여지가 없다.

"헛돈을 왜 쓰느냐"는 호통이 눈앞에 아른거릴 뿐이다.

이런 우리 실정에 "바가지를 쓰지 않겠다"는 것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다.

물론 미국이 한국에만 무기를 파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다른 나라가 사들인 가격이 상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도 바가지를 쓰고 산 가격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더욱이 무기는 여러가지 사양(option)의 선택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

각 사양의 독립적 가격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한, 다른 나라의
구매가격을 기준삼아 이를 우리의 무기거래에 일률적으로 적용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미국무기가 아무래도 비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러시아 프랑스등 다른
나라 대체무기를 사려고 해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존의 미국 무기체계와 맞지 않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재고하는
것이 어떠냐"는 미국측의 은근한(?) 압력이 들어온다는 고백이었다.

기술종속이 우리의 구매반경을 얼마나 제약하고 있는 요인인 가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더 큰 적은 내부에 있다.

실무자들이 제 아무리 열심히 자료를 찾아보고 노력해서 좋은 물건을
선택하고 또 제 값에 가깝게 흥정을 해 놓아도 "윗 사람"이 이를 정치적으로
흔들어 버리면 그간의 노력은 공염불과 더 큰 좌절로 이어진다.

공군의 차세대전투기 구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조종간을 잡는 공군조종사들은 이용자로서의 평가기준이 있다.

이에 근거해 공군은 FA18을 원했고 또 이를 구매하기로 일단 잠정
결정했지만 노태우 전대통령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F16으로 기종을 바꿔버린
것이다.

결국 더 큰 세금누수 구멍을 방치한 채 아무 힘없는 실무자들에게만
뇌물을 주고받았느냐는 의혹을 캐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