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와 금융권의 압박수위가 갑자기 높아지고
있는 것같다. 고위 정책당국자들이 연일 여러경로를 통해 5대그룹의
가시적인 구조조정을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27일에는 채권금융단 협의기구인
사업구조조정추진위원회가 5대그룹 빅딜안에 대해 대부분 수용을 거부하고
대폭적인 수정을 요구했다. 금융감독위원회가 행장을 포함해 조흥은행 임원
3명을 퇴진시킨 것도 대기업 구조조정촉진을 위한 시위라는 해석도 있다.

기업들간에 어렵사리 합의했던 빅딜안이 거의 원점으로 되돌려진데 대해
재계는 매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기업구조조정이 신속하고
강도높게 추진돼야 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또 사업구조조정
위원회가 지적한 내용의 상당부분은 원론적 입장에서 상당한 당위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취하고 있는 대기업 구조조정의 절차와 방법이
과연 정당하고 효율적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않을수 없다.

우선 정책의 일관성과 현실성이 결여됐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정부와 재계는 그동안 5차례의 정책간담회를 갖고 조율과정을 거쳤고,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 업종의 빅딜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사업구조조정추진위원회는 석유화학등 빅딜 4개 업종중
정유를 제외한 3개업종에 대해 전면 수정을 요구했다는 것은 재계를 혼란
스럽게 할만한 조치다.

재계가 더욱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는 것은 빅딜을 포함한 재벌개혁의
요구가 정리되지 않은채 너무 혼란스럽게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이 한 연구기관 초청간담회에서 5대그룹의 부실계열사 정리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한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우리는 대기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율추진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누차 지적한바있다. 따라서 정부가 만에 하나 그룹해체와
같은 극단적인 처방을 생각하고 있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욱 악화시
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구조조정의 현실적 대안
마련이 쉽지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강경 일변도의 압박을 계속할 경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걱정스럽다. 정부의 보다 분명한 입장정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빅딜을 포함한 정부의 대기업 구조조정 요구는 너무 성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산실사등 절차가 진행중인 재계합의안을 거부한 것이
그렇고, 연말까지 마무리해야 한다는 일정 제시도 기업현실을 감안한다면
무리가 있다. 빅딜안 거부가 그동안 관심을 가져온 외국인투자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소지는 없는지도 한번쯤 되새겨보아야 한다. 외국인들의
관심사는 기업구조조정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사실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빅딜이건, 구조조정이건 우격다짐은 곤란하다. 정부와
재계는 머리를 맞대고 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한 합리적 대안을 찾는데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