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사물의 모든 성질이 나타난다(명전자성)"는 옛말이 그렇게 허황된
것 만은 아닌 것 같다.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나 기관,기업 등의 이름을 지을 땐 그만한
사연이 있다.

이름을 잘 살펴보면 출생의 내력과 지내가는 품새를 상식만으로도 알만하다.

"마당쇠"는 종살이하는 어미가 마당에서 진통을 치르다 받아낸 막되먹은
팔자다.

"삼돌이"는 세째 아들이고 "귀남이"는 잔뜩 기다린 아들을 제치고 나온
섭섭한 여식이다.

서양의 "스미쓰(Smith)"는 먼 조상이 대장장이였을 게다.

"챨스(charles)"는 용감한(라틴어 Carolus) 군인의 후손이다.

일본의 무라야마나 다나카는 필경 조상이 농촌 출신이다.

난데없이 성명학을 논하자는게 아니다.

이름자의 획 하나로 운명이 좌우되고 글자마다 음양오행의 심오한 뜻이
들어 있다는 미아리 "도사"들의 공연한 훈수를 두둔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얼마전에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이제는 은행과 증권사 등을 "금융기관"
이라고 부르지 말자"고 했던 얘기가 떠올라서 꺼내는 얘기다.

앞으로는 "금융기업"라고 부르자고 제언했다.

"기관"이라고 하면 고객들이 금융사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 곳으로 오인할
수 있으니 "기업"이라고 불러 제대로 이해시키자는 설명이었다.

"망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단면을 예로 든 그의 뜻을 충분히 알만하다.

우리나라의 "금융기관"은 그 단어만으로도 어쩌다 그들이 "기관"으로
태어나야 했고 어떤 숙명으로 살아왔는 지를 대번에 알수 있다.

가장 짧은 시간안에 기적적인 성장을 이루어야 할 상황에서 국민의 돈을
다루는 금융회사들은 정부의 일부일 수 밖에 없었다.

몇푼 안되는 재원을 정책적으로 필요한 곳에 몰아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돈을 굴리는 것을 은행에 내 맡긴다는건 정부로썬 직무유기였다.

이자율은 나라에서 정해 주었고 심지어 새 상품을 만들거나 점포를 낼
자리도 당국의 "윤허"를 받아야 했다.

간부진도 "위"에서 찍어주었다.

"기관장"은 말할 것도 없이 "기관"에서 나간 사람이 맡았다.

한국의 금융회사들은 "기적"이 끝나고 나서도 "기관"으로 남았다.

그들 스스로도 민간기업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했고 관료들 역시 놔줄
의사가 없었다.

세상이 바뀌었지만 "관치"는 계속됐다.

"상업성"이라는 단어는 아예 잊어버렸다.

관치금융은 자연스럽게 "정치금융"으로 이어졌다.

돈을 빌려줄 때의 관심사는 회수가능 여부가 아니라 누가 신경을 쓰는가
였다.

오랜 세월동안 이어진 정.관과 금융사간의 근친교배는 금융시스템을 기형
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끝은 이 나라를 통째로 미증유의 위기로 몰고간 "환란"으로
귀착됐다.

고종황제는 어릴 때 궁궐안에서 부른 이름이 "개똥이"였다.

황희 정승의 아명은 "도야지"였다.

점잖은 이름이 없어서가 아니다.

부정타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라는 뜻에서 험한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하지만 장성해서는 제 이름을 돌려주었다.

이제 우리 은행과 증권회사들에게도 제 이름을 돌려줄 때가 됐다.

홍역도 치렀고, 좋든 싫든 시집장가도 들고 있다.

배필을 얻어 살림을 차리는 마당에 아직도 "개똥이"라고 부르는 것은
횡포다.

돌려 줄 이름은 "금융회사"다.

물론 이름 바꾼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흰 머리 검게 물들이고 빨간 넥타이 맨다고 개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금융기관에서 "기관"이라는 두 글자를 떼어내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존재의미와 가야하는 길이 달라진다.

개발연대이후 오늘까지 지속된 "관치"의 악연을 떨쳐 버리는 변화다.

잘잘못을 "기관"이 아니라 "시장"에서 평가받게 하는 일이다.

명실상부한 "기업"으로의 환골탈태다.

대출을 청탁하는 사람의 명단을 공개하고, 최고경영자를 민간에서 뽑는
것도 중요하다.

대출제도를 바꾸는 일도 시급하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보다 쉬운 일부터 하자.

"기관"이라는 꼬리를 떼어 버리자고 모처럼 "기관"에서 바른 소리를 했는데
들은 척도 않는 세태가 안타깝다.

< manh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