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과 경제학계의 중진인
서울대 정운찬 교수가 정부의 5대 재벌 개혁속도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이 위원장과 정 교수는 26일 오후 KBS 제1라디오의 "라디오정보센터
박찬숙입니다" 프로그램에 차례로 출연, 정 교수는 정부의 재벌개혁이 너무
늦다고 비판했고 이 위원장은 "야생마 길들이기론"을 펴며 조만간 5대그룹
구조조정에 가시적인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정 교수는 먼저 "기업.금융구조조정은 스피드가 중요한데 속도가 너무
늦다"고 지적, "2000년에는 총선이 예정돼 있어 내년 7월부터는 정치의
계절이 돼 정부가 구조조정을 유도하기 힘든 상황이 되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벌은 지금까지 자기들(계열사)끼리 물건을 사고팔아 경쟁이 공정
하지 않았고 따라서 우리나라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시장이 없다고 할 수
있다"면서 "시장이 없는데 정부가 구조조정을 시장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따졌다.

그는 이어 "과거에는 형평 차원에서 재벌문제를 다뤘지만 지금은 효율차원
서 다뤄야 하며 부작용이 겁나서 5대 재벌에 손을 못대는 바람에 과거 재벌
개혁은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이에대해 이 위원장은 야생마 길들이기론으로 맞섰다.

이 위원장은 "야생마(5대그룹)에 바로 안장을 올리면 난리가 나기 때문에
먼저 길들이려면 펜스를 쌓고 그 안에 몰아넣고 뛰게 해야 하는데 이제 그
단계는 끝났다"면서 "CP.회사채 발행한도 제한, 은행의 대출한도 강화,
여신심사기능 강화 등이 그런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에따라 "구조조정 초기 금융시장에서 신용불안으로 5대 그룹으로만
몰리던 돈이 최근에는 중견기업들로 많이 흘러들고 있으며 이는 야생마가
울타리안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 고광철 기자 gw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