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항상 따뜻한 안식을 주는가".

가족에 대해선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기를 망설인다.

가족의 신성함을 훼손할 수 없다는 묘한 의무감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과 세상살이에 지쳤을 때 돌아가 쉴 수 있는 곳.

그 마지막 보루마저 부정한 뒤 남을 절망과 허탈감이 두렵기 때문이다.

박철수 감독의 "가족시네마"는 이 명제에 도발적인 물음을 던진다.

가족은 서로를 위해 참고 희생하는가.

불행히도 그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가족안에서도 구성원들의 개인적 삶은 서로 충돌하고 때로는 가부장적
질서하에서 강요와 억압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미명으로 은폐돼 있을 뿐이다.

박 감독은 이 음울한 소재를 블랙코미디의 그릇에 담아냈다.

재료는 재일교포 가족.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이 장녀의 생일을 계기로 20년만에 재회, 가족사를
다룬 기록영화를 찍으며 영화는 시작된다.

AV(Adult Video.성인용 애로영화)배우인 막내딸의 출세를 위한다는
목적이다.

영화에서는 가족을 떠났으면서도 가족을 그리워하는 인물들이 그로테스크
하게 희화화된다.

방탕한 카지노기술자로서 집안살림에 무관심했으나 가족이 함께 살 날을
꿈꾸며 집을 마련하는 아버지, 돈만 밝히는 바람둥이 복부인이면서도 딸의
저녁반찬을 걱정하는 어머니, 가족을 떠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나, 분열된 가족에 절망하고 스스로 자폐된 남동생, 배우로서의 출세에
사로잡힌 철부지 여동생 등이다.

사랑과 미움을 함께 지닌 사람들의 불안과 갈등이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가족시네마"는 재일교포작가 유미리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지난해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품.

이를 박 감독이 일본배우를 기용, 일본말로 영화를 찍음으로써 화제를
모았다.

특히 유미리의 실제 동생이자 성인용 애로영화배우 출신인 유애리가 장녀
모토미역을 열연했다.

재일교포 극단인 신주쿠 양산박 배우들을 중심으로 양석일, 이사야마
히로꼬, 마츠다 이치호 등이 출연했다.

교포작가가 썼지만 한국과의 연결점이라고는 부부가 싸울 때 우리나라말로
욕설을 퍼붓는 정도밖에 없다.

오히려 한 가족이 벌거벗고 온천욕을 즐기고 포르노배우가 떳떳이 활동하는
등 한국정서와는 다른 일본문화가 등장해 이질감을 줄 정도다.

그러나 영화는 국내 상황에 맞춰봐도 그럴 듯하다.

어느나라에서 살든지 한번쯤 고민해봤을 가족의 의미가 그만큼 보편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적 상황을 희극으로 승화해낸 감독의 깔끔한 연출솜씨가 돋보인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