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처한 기업은 자원을 한곳에 집중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근원적인 문제를 찾아내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의
혜안이 필요하다.

회사의 강점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전략을 세워야 한다.

서둘러 위기에서 벗어나려 하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질수 있다.

레이몬드 길마틴(57) 회장이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머크사를 위기에서
구할수 있었던 것도 제약회사에 가장 필요한 경영전략을 고수하면서
회사역량을 한 곳에 집중시킨데 따른 것이다.

머크(Merck)사는 20세기 초 항생제 페니실린 대량 합성과 스테로이드
관절염 치료제, 결핵약 스트렙토 마이신을 선보여 명성을 떨치던 회사였다.

포천지에 잇따라 가장 존경 받는 기업으로 선정됐으며 여성이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1668년 독일의 약종상인 프리드리히 머크가 설립한 약제가게에서 출발한
머크사는 1887년 미국에 지사가 설립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본사와 결별,미국 기업으로 변신한 머크는 탁월한
신약을 잇따라 개발하면서 세계최대의 제약회사로 발돋움했다.

제약쪽에서 명성을 쌓으며 탄탄한 입지를 지켜 온 머크사에 위기의
순간들이 닥친다.

93년 클린턴 대통령이 의료비를 삭감하는 정책을 펴면서 경영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당선 전부터 GNP의 14%에 육박하는 미국인의 의료비용이 과다하다고
주장해온 클린턴 미 대통령은 취임후 정부와 보험자가 직접 관여하는
관리형 의료제도 (Managed Care System)를 도입했다.

그 결과 제약사들은 약품 가격에 대한 독자적 결정권을 잃고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됐다.

그 여파로 제약산업에는 신약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R&D 비용을 줄이기
위한 합병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글락소 웰컴 과 노바티스등의 합병 회사가 탄생함에 따라 머크는 매출
규모에서 3위로 밀려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립선염 치료제 프로스카의 판매부진으로 94년 주가가
92년 초 주가의 절반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기 까지 했다.

이러한 위기에 닥친 머크를 회생시킨 사람은 다름아닌 머크의 100년
역사상 최초의 영입 회장인 레이먼드 길마틴 회장이다.

뉴욕 롱 아일랜드에서 성장하고 뉴욕에 있는 유니온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길마틴 회장은 대학 졸업 후 이스트만 코닥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경영 컨설팅 업무를
시작했다.

8년간의 컨설팅 경험을 쌓은 후 의료기기 제조업체인 벡톤 디킨슨사의
기획조정실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최고 경영자(CEO) 지위에 올라
머크사 회장으로 취임하기까지 18년간을 벡톤 디킨슨사에 종사하며 회장까지
역임했다.

기업 경영의 문제점과 그 처방에 익숙한 길마틴은 머크사 최고
경영자(CEO)에 취임 후 획기적 연구를 통한 중요신약 개발을 성장 전략으로
설정했다.

다른 제품과는 달리 사람이 복용하는 신약 개발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하나의 신약이 개발되어 판매 되기까지에는 평균 12년이 소요되고
그 비용은 수 천억원이 소요된다.

더욱이 성공률도 낮다.

길마틴 회장이 단 기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지 않고 근본적인
전략을 수립하는데 힘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다른 전략은 머크사 약품의 가치를 고객에게 입증시키려는 마케팅활동을
강화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위기의 실마리를 찾자는 취지였다.

길마틴 회장은 머크사의 좋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고객에 다가가 자사
제품의 효능 등을 논리적으로 고객에 설득하는데 힘썼다.

또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의약품 유통 업체인 메드코를 통해 유럽과 일본에
유통망을 확보하는 등 해외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했다.

이와 같은 전략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대내외 환경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을 갖추는 것이었다.

이런 취지에서 길마틴은 연구 개발을 주축으로 제약 부문을 강화하고
사업의 다각화를 지양했다.

뿐만 아니라 회사의 자원을 주력사업에 집중하기 위하여 칼로 베스타랩과
켈코 특수화학 사업,정신건강관리 사업 등을 포함한 10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과감히 매각했다.

또 조직의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식 조직에 의한 의사 소통
경로외에 비공식적 성격의 사외 미팅 방법을 많이 활용했다.

사외 미팅은 휴식 시간이나 점심 또는 저녁 식사 시간에 격의 없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업무에 관한 토의가 이뤄지는 것으로 상하, 동료
상호간의 벽을 허물고 상호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길마틴 회장은 또 성장 전략을 뒷받침 하기 위해 조직을 정비하고
의사소통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경영위원회 등을 구성했다.

경영위원회는 10여명의 간부로 구성돼 회사 발전에 관한 주요 안건을
토의 함으로써 환경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최고 경영자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방지할 수 있다.

물론 경영 합리화를 위해 경비절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1995년과 1996년에 3억5천만달러의 경비를 삭감해 신약개발과 판매비에
투입했다.

위기에 처한 회사를 구하기 위해 그가 경영전략으로 추진한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회사 임직원들부터 인정을 받게 됐고 조직구성원의 사기를 회복시켜
적지않은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그가 머크사에 부임한지 18개월 만에 매출액은 32%, 순익은 29%
증가됐으며 주가는 162%나 상승했다.

이밖에 이기간 동안 머크사는 8개의 신약을 개발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 중에는 에이즈 치료제인 크릭시안등도 있었다.

그가 단시일 내에 괄목할만한 경영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회사의 이익
보다는 인류복지를 중시하는 머크사 창업이념을 존중하면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강구하는 그의 경영철학 덕분이었다고 볼수
있다.

< 이윤정 AT커니 컨설턴트 seoul-opinion@atkearney.com
이익원 기자 ik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