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비롯한 이머징 마켓의 위기는 과연 큰 고비를 넘겼는가.

상반되는 지표가 난무하면서 월가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경상수지 금리 환율 주가 등의 거시지표를 중시하는 전문가들은 "바닥
탈출"을 단언한다.

그러나 기업구조조정이나 재무제표, 고용 등의 실물지표를 분석하는 사람들
에겐 "어림없는 소리"다.

도대체 한국을 비롯한 위기국들의 경제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월가에서는 요즘 이 문제를 점치기 위한 갖가지 분석이 시도되고 있다.

이중에서도 월 스트리트 저널이 최근 제시한 10가지 "정황지수(atmospheric
indications)"가 전문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환율 국제수지 금리 등 기존의 판에 박은 지표들과 달리 경제의 저변까지도
"확실하게"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상황을 대입해 볼만한 의미가
있다.

첫째는 악성 루머와 주가 움직임의 상관 관계다.

대형 악재의 돌출에도 불구하고 증시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해당국
의 경제 체질이 그만큼 단단해졌다는 반증이라고 한다.

둘째는 세계 초우량 채권인 미국 재무부채권(TB)과 해당국 채권간의 수익률
격차다.

격차가 축소되고 있다면 세계의 돈줄이 확실히 그 나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셋째는 증시에 주가 급등락 현상이 일고 있는지 여부다.

하루나 이틀 간격으로 널뛰기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면 비록 전반적인
주가는 오름세를 타고 있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넷째는 외환 보유고다.

가용 보유고가 충분히 회복됐다면 돌발적인 외환위기의 재발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섯째는 인플레 기대심리가 일고 있느냐다.

인플레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나타난다면 최소한 "공황"을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여섯번째는 국제 1차상품 가격 동향.

석유 등 원자재값이 오름세를 탄다면 국제적으로 실물경기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일곱번째는 수입 동향이다.

단순히 경상수지가 흑자를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입이 늘어나야
경기가 확실하게 회복되고 있다고 진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덟번째는 아시아의 최대 교역 상대국인 미국과 아시아 각국을 오가는
컨테이너선의 만선 여부다.

아홉번째는 일본의 경제상황.

마지막으로 꼽은 것은 주요 지표가 전망치보다 좋게 나타나느냐 여부다.

과거 멕시코 외환위기 등의 경험으로 볼 때 실제 경기지표가 비관론자들의
예상을 웃돈 것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때 쯤에서야 경제가 바닥을 벗어났다는
설명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제시한 "10제"중에서 한국경제가 자신있게 긍정적인
답안을 낼 수 있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단 한개의 항목 뿐이다.

외환 보유고다.

증시는 여전히 국내외 변수에 따라 춤을 추고 있고 외평채 유통금리는
아직도 발행 당시보다 높은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상수지가 흑자행진을 하고 있지만 수입은 엄청나게 줄어들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내에서는 섣부른 낙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

냉철한 자가진단이 아쉬운 시점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