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한 연구소가 발표한 IMF사태후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연구한 논문을
보면 흥미있는 대목이 나온다.

회사를 평생직장으로 알고있던 회사형 인간들이 줄어들고 가정이 모든 생활
의 근원지로 부활한다는 이야기다.

가장의 권한도 그만큼 향상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상적인 가정의 경우고 그동안 문제가 잠재해 있던 가정에서
는 가족폭력 성문란 버림받는 사람이 증가할 것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IMF체제아래 1년을 보내는 동안 사회 곳곳에서는 희망적인 징후보다는 위기
의 징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가장의 실직과 가출, 가족동반자살, 이혼 등이 줄을 잇고 가정파탄으로 하루
아침에 가장이 된 노인과 아이들이 지금도 속출하고 있다.

개인 삶의 최후 보루인 가정까지 무너져간다는 우려의 소리도 높다.

특히 금년 1월부터 10월말까지의 합의이혼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나 늘었다는 서울가정법원의 통계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혼 사유도 IMF로 인한 실직 부도 등 경제적 갈등이 대부분이다.

생활무기력 가정폭력 등 부부 문제가 경제위기로 곪아터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런데 일본은 좀 다른 모양이다.

최근 일본의 한 보험회사가 20~60대 부부 8백16쌍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장기간의 불황으로 가계에 주름살은 갔지만 오히려 부
부금실은 더 좋아졌다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는 것이다.

불황이 부부금실엔 약이 된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어느 소설가는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으면서 혈연의 창조자가 되고 서로 믿고
만족하며 스스럼없이 희생하고 서로 사랑하며 금실좋게 살아가는 부부를
"인생의 총본부" "세계의 총본부"라고 칭송했다.

인생과 세계의 기초단위라는 의미다.

흔히 조강지처를 내세우지만 술지게미를 먹어가며 함께 살던 부부가 경제적
으로 어렵다고 해서 쉽게 갈라지는 것은 인륜에도 어긋난다.

일본인들처럼 어려울 때일수록 부부가 힘을 합쳐 불황을 이겨나가려는
의지가 아쉽다.

우리는 아직 장기불황의 초입에 들어서있는 탓일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