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와 태평양의 하늘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대부분의 APEC회원국들이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성장률이 플러스인
나라도 수치는 갈수록 둔화추세다.

"태평양 시대가 열린다"는 얼마전의 구호는 "아시아를 본받지 말라"로
바뀌었다.

APEC회원국중 올해 플러스 성장세를 보일 만한 국가는 아시아권에서는
그나마 성장률이 크게 떨어진 중국 대만 등 극소수다.

최근 각종 연구단체들의 전망치를 분석하면 아시아권은 올해와 내년에
걸쳐 최악의 상황을 경험할 것이 분명하고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다소간의
희망을 가져볼 수 있는 상황이다.

만일 다른 돌발적인 악재가 생긴다면 이 마저도 기대할 수 없다.

와튼경제연구소(WEFA)의 세계경제 시나리오 중 비관적 상황을 보면 세계
경제는 내년에 0.2%의 제자리 성장을 보인다음 2000년에나 1.2%의 성장을
보일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

아시아는 이제 고비를 넘긴 것인가.

주가와 환율의 안정세가 지속되고 디플레도 서서히 바닥을 넘어서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호전인가.

아직 정리하지 못한 부실금융과 지지부진한 구조조정이 또다시 발목을
잡을 것인가.

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요 회원국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상황을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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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원화, 태국의 바트화와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역시
하반기들어 가치가 크게 회복됐다.

지난 1월 한때 달러당 1만7천루피아까지 치솟았던 루피아화 환율은 요즘
7천선에서 비교적 안정된 모습이다.

이처럼 루피아화가 회복되고 있는 것은 하비비 정부가 IMF의 개혁 프로그램
을 수용, 국제적인 자금지원이 재개된 덕분이다.

국제채권단 모임인 파리클럽이 지난 9월 인도네시아 정부의 외채 42억달러에
대해 상환기한을 연장해 준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고무돼 인도네시아 정부는 민간외채의 상환기한 추가연장도 모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대외부채는 총 1천3백40억달러로 알려져 있다.

이중 8백억달러 상당이 민간부문 외채이고 나머지 5백40억달러가 정부부문
외채로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통화가치 회복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인도네시아 경제는
환란 3개국중 가장 더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상반기중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2%대를 기록했으며 물가상승률은
무려 79.1%에 달했다.

여기에다 이상기후로 인한 흉작까지 겹쳐 2억2천만 인구중 40%가 넘는
8천만명 이상이 극빈상태에 빠져 있다.

이 가운데 1천7백만명 정도는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치사회적 불안이 거듭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비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워낙 낮아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또 50개가 넘는 정당들이 난립, 극심한 국론분열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와함께 최근에는 참혹한 연쇄살인극과 약탈.방화사태도 벌어져 사회불안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수하르토 퇴진 직전에 나타났던 극도의 혼란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를 반영, 최근 홍콩의 정치사회안정도 조사기관인 PERC는 아시아 12개국
가운데 인도네시아의 사회불안이 가장 심한 것으로 평가했다.

문제는 이같은 정치사회적 불안이 지속되면 그나마 인도네시아 경제에
한줄기 희망인 해외로부터의 지원마저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하비비정부가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화교자본의 복귀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