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APEC 정상회의에 아시아적 가치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지도자들이 참석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김대중 대통령과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눈에 띈다.

세계각국의 지도자들이 모인 정상회의 자리여서 일부러 논란을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비공식 석상에서 한두마디라도 나오면 상당한 흥미를 끌수도 있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정의와 평가만큼 논란을 빚는 소재도 드물다.

아시아적 가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학자들은 정실주의와 이중규범,
부정부패, 권위주의 등이 아시아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외환위기를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그 반론자들은 아시아 위기의 원인을 경제적인 이유에서 찾는다.

외환상황이 좋지않은 시점에 국제투기꾼들이 들이닥쳐 주가와 환율을 들먹여
놓은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아시아적 가치는 오히려 그동안 기적을 일으킨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런가하면 아시아적 가치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고 그런 관습은 세계
어디에도 있다는 이들이 많다.

아시아적 가치중에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순기능은 오히려 본받아야 한다고
중도론을 펴는 학자도 있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비판론자의 견해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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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정책이론"으로 노벨경제학을 수상했던 미국의 제임스 뷰캐넌 조지
메이슨대 교수는 "아시아적 가치는 분명 이 지역에 존재하고 있는 실체이며
그것이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성장을 이끈 것이 아시아적 가치였다면 오늘날 상황을 어렵게
만든 요인도 아시아적 가치였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지난 4월 조지 메이슨대학에서 열린 "아시아의 윤리와 제도, 그리고
아시아 경제"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아시아 각국이 비교적 단일한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아시아적 가치의 토대"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아시아적 가치는 따라서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서방국가의 가치와
엄연하게 구별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지역 국가들이 합리적인 계약 관계보다는 친소관계를 중시해
왔다"며 "이같은 특징이 경제위기의 원인이 됐고 경제위기 극복을 어렵게하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아시아적 가치에 담겨있는 정실자본주의, 엄격한 관료주의, 가족주의,
온정주의 등 문화적인 특성이 아시아 위기를 불렀다는 설명이다.

뷰캐넌 교수는 그러나 아시아적 가치를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는 "아시아적 가치가 현재의 경제위기를 불렀다면 그동안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것 역시 아시아적 가치였다"라고 주장한다.

개인의 사회적 책임과 헌신을 강조하는 아시아의 유교주의적 유산은
서구사회가 오히려 본받아야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특히 "자본주의화가 일방적인 서구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아시아의 가치관을 폐기하거나 서구화에 치중하라는
뜻은 아니다"라고 충고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