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경제협의회에 참석하러 워싱턴에 온 선준영 외교부차관이 4일 미국기업
연구소(AEI) 초청으로 오찬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한 기자가 질문을 했다.

기아자동차 입찰과정에 투명성과 공정성이 결여돼 포드자동차가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한국정부의 입장을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선 차관의 대답은 간단했다.

"기아입찰은 투명하고 공정했다"는 한마디 뿐이었다.

또 다른 사람이 물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2백50여명의 정치범이 생겼는데 정치범으로
속박받았던 김 대통령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선 차관은 "나는 당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외마디 말로 끝내 버렸다.

질문을 한 두사람 모두 머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답변을 들었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왜" 질문이 잘못됐는지에 대해선 한마디도 설명
하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연히 트집잡지 말라"는 투로 들려졌을 수도 있다.

기아입찰 문제는 외국인들로부터 질문이 나올수록 좋은 홍보거리가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입찰절차와 서류평가를 외국기관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투명성에 대한 외국인들의 왜곡된 인식을 고쳐줄 수 있는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정치범과 관련된 질문에서도 "정치범의 정의"나 "통계의 근거"를 따지면서
오해를 풀어주었어야 옳았다.

홍보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외교관, 준비되지 않은 세일즈 맨의 모습에서
한국이 왜 위기를 겪고 있는 지를 느낄 수 있었다.

< 워싱턴 = 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