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따라 계곡과 저수지 그리고 바다로 나들이하는 낚시꾼의 별칭으로
강태공이라는 말을 쓴다.

바늘없는 낚시를 이용해 세월을 낚은 것으로 유명한 강태공은 중국 주나라
초기의 정치가이다.

본명은 강상이다.

그의 선조가 여나라 제후에 봉해진 까닭에 여상이라 불리기도 한다.

강태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은나라에서 주나라로 넘어가는 역사의
뒤안길을 훑어야 한다.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는 문무 양쪽 모두에 뛰어난 일세의 영걸이었는데
경국지색 달기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게 된다.

주지육림은 이 때 등장한 낱말이다.

당시 서쪽의 제후였던 창은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있었다.

이를 두려워한 주왕은 창을 옥에 가두고 그가 진실로 성인인지를 시험해
보겠다며 창의 맏아들을 죽여 곰탕을 끓인 뒤 먹게 하였다.

그날 아침 점괘를 통해 이 사실을 알았지만 자신의 현명함이 알려져 무고한
백성들을 구하지 못할 것을 염려한 창은 그 곰국을 묵묵히 받아 먹었다.

이러한 아픔과 함께 감옥에서 기거하며 거미가 줄을 치는 모습을 통해
주역 64괘 하나하나의 총론에 해당하는 괘사를 완성하게 된다.

강태공은 후일 감옥에서 풀려난 창(후에 문왕으로 추존)의 초빙을 받아
그의 스승이 되었다.

그의 아들 발(무왕)을 도와 주왕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했다.

원래 동해출신의 가난한 선비였으나 위수에서 낚시질을 하며 때를
기다리다가 문왕을 만나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로 인한 궁핍을 참다 못해 도망친 아내와 후일 길거리에서 재회하게
되지만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못본 체 한 일화는
유명하다.

경제적 수완과 병법가의 양쪽 능력을 고루 갖춘 유능한 재상으로 평가된다.

병서 "육도"가 그의 저서로 전해진다.

때로 종교적 관점에서 영통과 신통을 겸비한 인물로 추앙되기도 하며 극히
일부 술객들이 활용하는 영산육효 점법의 창시자로 알려지기도 한다.

성철재 <충남대 언어학과교수/역학연구가 cjseong@hanbat.chungnam.ac.kr>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