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대표 이용한)은 최근 반도체용 쿼츠 생산업체인 원익석영이 무역회사
인 원익통상을 합병, 새 출발을 한 회사다.

원익은 이를 통해 수출역량을 극대화, 세계적인 쿼츠메이커로의 부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원익은 내수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현상황을 자사를 세계화하는데 오히려
호재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세계최고 수준에 올라 와 있는 원익의 쿼츠제품은 그동안 생산물량이 모자
라 해외에 공급하지 못했는데 이 기회에 생산시설을 확충, 세계시장을 공략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원익은 이를 위해 작년에 이미 해외 2곳에 생산거점을 확보했다.

미국(원익쿼츠그룹)과 대만(원익석영공사)에 각각 합작법인을 설립, 올해
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국내 반도체 부품메이커 중에서 자체기술로 해외에 생산공장을 건립한 것은
원익이 처음이다.

유럽지역은 GE를 통해 수출키로 약정을 맺었다.

이로써 원익은 일본을 제외한 한국 미국 대만 등 반도체 주요생산국에 모두
생산기지를 마련, 세계적 메이커로서의 성장토대를 구축한 셈이다.

원익이 이같이 성장하기까지에는 이용한 사장의 첨단제품 국산화에 대한
남다른 집념과 노력이 있었다.

무역업(원익통상)을 하던 이 사장이 이 사업에 뛰어든 것은 지난 83년.

81년부터 무역업을 하다보니 국내회사들이 각종 부품들을 비싼 값에 들여옴
으로써 외화를 낭비하는 것을 보고 젊은 나이(28세)에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
다.

그는 그래서 언젠가는 나도 제조회사를 설립해서 수입되고 있는 제품들을
국산화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사장은 국내에서 개발되지 않고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유망 아이템
을 꾸준히 물색하고 다녔다.

당시 원익통상은 미국 GE사의 쿼츠부문 한국 에이전트를 맡고 있었다.

쿼츠제품은 반도체 웨이퍼 가공공정에 사용되는 핵심부품.

쿼츠제품이 전량 수입되고 있는 것을 파악한 이 사장은 이를 국산화 한다면
향후 전망이 매우 밝다고 판단했다.

83년10월 한국큐엠이(KQME)라는 회사를 한미합작으로 설립, 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94년12월 상호를 원익석영으로 변경한 이 회사는 84년6월 공장을 준공하고
85년1월부터 신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체기술로 쿼츠제품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완전 국산화하는데는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당시 선진외국업체들이 공장내의 생산시설을 일체 공개하지 않을 정도로
기술보호를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신제품을 내 놓고 나니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요자인 반도체3사가 국산제품은 믿을 수 없다며 사용해 주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 사장은 할 수 없이 신뢰성이 확보될때까지 공짜로 써 보고 품질을 평가
해 달라고 했다.

제조사들이 국산쿼츠제품을 사용해 보니까 품질은 외산과 큰 차이가 없고
값은 수입제품의 절반 밖에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주문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때마침 국내 반도체 산업이 호황기를 맞으면서 원익석영의 매출은 급속히
늘어나게 된다.

87년 2억9천만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연평균 1백%씩 신장, 89년 29억원,
93년 57억원, 96년 2백3억원으로 불어났다.

올해는 수출 4백만달러를 포함, 2백1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내년에는 합병시너지효과까지 겹쳐 수출 8백만달러를 포함 3백2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64메가D램 제조공정용 8인치 쿼츠제품을 개발했던 원익은 현재 2백56메가
D램 및 1기가D램 제조공정용 12인치 신쿼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업계의 기술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원익과 함께 GPS안테나 등 첨단통신부품을 생산하는 원익텔콤, 메탈헬라이드
등 첨단조명제품을 생산하는 원익조명 등 계열사에서도 정밀첨단제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창업투자회사인 한미열린기술투자의 경영권도 인수, 벤처기업인 원익테크를
집중.육성하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 통신 등 21세기 유망산업분야의 부품중에서 독자적인 기술력
을 확보, 세계적인 중소기업으로 자리잡겠다는 것이 원익의 구상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