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역학 이야기] 뉴에이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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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컨(Kevin Kern)이 연주한 "비밀의 정원(Secret Garden)"을 들어본
일이 있나.
노르웨이와 아일랜드의 전원적 이미지가 고운 멜로디에 마디마디
아롱져있다.
데이빗 란츠의 피아노 연주, 야니의 아크로폴리스 실황연주, 그리고
에냐의 명상음악들과 같은 작품들을 뉴에이지의 부류로 묶는다.
출발점은 80년대 초반으로 잡고 있다.
"선"이라고 하면 개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참자아로서의 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말함이며 명상법은 이 과정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탄생부터 그 발현까지 동양이 그원류를 형성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서구인들이 왜 동양인들보다 더 앞장서서 "자연에의 회귀"니
"신비주의 철학의 부활"이니 하는 궁극적 성찰에 관심을 보이는 걸까.
아마도 철저하게 개인을 분리시키는 그들의 오랜 생활습성이 이러한
사상추구에 잘 들어맞기 때문일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은 이와 같은 문화운동의 한 일환으로 80년대 들어 구체화된
모든 정신적, 실천적 경향을 총체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뉴에이지 음악은 이러한 운동의 일환으로 탄생된 음악쟝르이다.
일본 음악가 키타로의 "실크로드"나 아일랜드 출신의 음악가 에냐의
"오리노코 강 물결" 등은 이 분야에서 고전으로 알려져있다.
음악에 아무리 문외한이라도 한번쯤은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듣고 있노라면 박동치던 심장이 가라앉으며 지친 심신을 편안히 침대에
누이고픈 심정이 든다.
음악은 문화의 한 부분이다.
문화를 상징하는 불(화)로서 음악을 표상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깨달음의
길(토)로 가는 족적은 불이 흙을 기르는 화생토의 과정으로 말할 수 있다.
만물을 주재하며 세상의 교통질서를 바로서게 하는 "토"의 역할이
스피노자의 말처럼 만물에 편재해 있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성철재 <충남대 언어학과 교수/역학연구가 cjseong@hanbat.chungnam.ac.kr>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0일자 ).
일이 있나.
노르웨이와 아일랜드의 전원적 이미지가 고운 멜로디에 마디마디
아롱져있다.
데이빗 란츠의 피아노 연주, 야니의 아크로폴리스 실황연주, 그리고
에냐의 명상음악들과 같은 작품들을 뉴에이지의 부류로 묶는다.
출발점은 80년대 초반으로 잡고 있다.
"선"이라고 하면 개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참자아로서의 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말함이며 명상법은 이 과정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탄생부터 그 발현까지 동양이 그원류를 형성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서구인들이 왜 동양인들보다 더 앞장서서 "자연에의 회귀"니
"신비주의 철학의 부활"이니 하는 궁극적 성찰에 관심을 보이는 걸까.
아마도 철저하게 개인을 분리시키는 그들의 오랜 생활습성이 이러한
사상추구에 잘 들어맞기 때문일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은 이와 같은 문화운동의 한 일환으로 80년대 들어 구체화된
모든 정신적, 실천적 경향을 총체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뉴에이지 음악은 이러한 운동의 일환으로 탄생된 음악쟝르이다.
일본 음악가 키타로의 "실크로드"나 아일랜드 출신의 음악가 에냐의
"오리노코 강 물결" 등은 이 분야에서 고전으로 알려져있다.
음악에 아무리 문외한이라도 한번쯤은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듣고 있노라면 박동치던 심장이 가라앉으며 지친 심신을 편안히 침대에
누이고픈 심정이 든다.
음악은 문화의 한 부분이다.
문화를 상징하는 불(화)로서 음악을 표상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깨달음의
길(토)로 가는 족적은 불이 흙을 기르는 화생토의 과정으로 말할 수 있다.
만물을 주재하며 세상의 교통질서를 바로서게 하는 "토"의 역할이
스피노자의 말처럼 만물에 편재해 있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성철재 <충남대 언어학과 교수/역학연구가 cjseong@hanbat.chungnam.ac.kr>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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