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전격 단행된 미국 금리인하의 배경을 놓고 월가 전문가들이
해석이 분분하다.

외견상 설명은 경기부양을 위한 응급처치로 돼 있다.

보름 전에 취한 금리인하가 효과를 내지 못해 추가처방을 내렸다는 것이다.

전문가의 대부분이 일단 이런 원론적 분석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번의 금링니하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가는 이달 들어서도 하루 등락폭이 3백포인트에 육박할 정도로 널뛰기
장세를 지속했고, 미국경제를 견인해 온 소비경기도 하강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양상이었다.

레저 외식 쇼핑 여행 부동산 등 미국의 이른바 "사치 산업"은 완연한
미끄럼을 타고 있다.

미국 중산층들에게 "사치 척도"의 하나로 통하는 캐비어(철갑상어 알)
소비량이 한달 새 절반으로 뚝 떨어졌을 정도다.

더욱이 이런 미국경기 부진의 여파는 세계경제 전반으로 증폭돼 가는
모습이었다.

"세계 경제 최후의 피난처(last resort)"라는 미국마저 본격적인 경기침체
로 들어갈 경우 세계경제는 30년대와 같은 대공황의 악몽을 꼼짝없이 재현할
것이라는 지적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FRB의 돌연한 2차 금리인하는 이런 피상적인 측면 외에 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월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90년대 초반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시작된 "킹 달러 시대"가 일단 막을
내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달러 강세를 뒷받침하는 1차적 수단이 금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지적은
설득력을 갖는다.

"킹 달러"는 냉전이 막바지 기승을 부렸던 80년대부터 미국이 염원했던
국가 목표의 하나였다.

엄청난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강국"의 상징이자
명분으로 "강한 달러"를 집요하게 추구했다.

달러를 강세통화로 유지할 경우 무역수지에서는 좀 손해를 볼지 몰라도
세계의 돈줄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는 등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탈냉전 이후 미국이 막대한 무역적자 누적에도 불구하고 8년째
경기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데는 외국자본의 끊임없는 유입이라는 재료가
큰 역할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금리를 일정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은 달러 강세와 함께 인플레를 억제하는
부수효과까지 안겨주어 왔다.

FRB는 이런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금리를 현상유지 내지 상향안정화하는데
안간힘을 써왔다.

이는 미국경제가 주가폭락과 금융경색의 한 복판에 놓여 있던 지난 88년
중반부터 89년초 사이에 금리를 오히려 3%포인트나 인상했던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미국의 올 2.4분기 성장률이 1%대로 급락하는 등 아시아위기의 여진이
미국으로 진행하는 조짐이 완연해지면서 지난 7월부터 금리인하론이 끊임없이
제기됐음에도 9월말까지 버틴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지난 9월말의 1차 금리인하 당시 조정 폭이 최소한 0.5%포인트는 돼야
한다던 월가와 국제경제계의 주문과 달리 FRB가 인하 폭을 0.25%로 최소화
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런 미국 금융당국이 부랴부랴 금리를 추가로 내린 것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국내외 경제상황을 더 이상 외면할 수 만은 없게 됐기 때문인 것으로
월가에서는 보고 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상징이었던 동시에 세계의 돈줄을 미국으로 일극화
시키는데 한몫했던 "킹 달러".

그러나 달러가치의 강세일변도다 다른 나라들의 위기상황을 자극함으로써
종국에는 미국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글로벌 경제를 풀어가는 변수들이 점점 더 복잡다단해지고 있음을 새삼
엿보게 한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