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언제 빠져 나갈지 모르는 긴 암흑 속의 행로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경제위기는 러시아와 중남미를 한바퀴 돌아 세계경제의
중심인 미국까지 집어 삼킬 태세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헤지펀드들의 부실이라는 새로운 복병이 등장했고
기축통화인 달러화조차 하루에 10% 가까이 요동을 쳐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세계경제를 살리자는 목소리는 요란하지만 정작 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만한 대안은 늘 "논의중"이다.

과연 세계경제는 동시공황이라는 파국을 면할 수 있을 것인가.

지구촌 주요 포스트에 위치한 해외특파원들의 취재와 분석을 통해 세계경제
의 현황과 전망을 점검해 본다.

=======================================================================


"동시 공황"의 어둔 그림자가 미국에도 드리워지는가.

가파른 상승행진을 지속하던 뉴욕주가가 8월 이후 큰 폭의 등락을 거듭하는
등 불안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실물 경제에도 잇달아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수출은 뒷걸음질을 계속하고 있으며 올 봄 4.3%로까지 낮아졌던 실업률은
9월중 4.6%로 0.3%포인트나 높아졌다.

미국의 활황을 지탱해 온 소비경기도 활력이 예전 같지 않아졌다.

최근 4개월연속 하락세를 보여온 소비자 신뢰지수는 9월중에도 100.9로
전월(104.4)보다 3.5포인트나 떨어졌다.

97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경기의 앞날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은 실물경제의 중핵을 이루는
자본재 산업이 완연한 하강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년여동안 미국의 고도성장을 견인했던 산업기계와 전자장비 업종의
경우 지난 9월중 각각 8천명과 9천명에 이르는 순감원을 단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시아의 경제위기가 미국의 실물경제에 본격적인 주름살을 입히고
있다는 반증이다.

알렉시스 허만 미국 노동부 장관이 "아시아 위기가 미국에 결코 남의 일
만일 수 없음이 확연해 졌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나섰을 정도다.

이같은 "실물위기"에 따라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긴가민가 했던 "디플레
위협론"을 한층 더 실감나는 현실로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메릴린치증권의 경제분석가 브루스 스타인버그는 "미국경기가 후퇴기에
접어들 가능성이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며 "6개월 전만 해도 별
설득력을 갖지 못했던 가상의 시나리오가 점점 미국의 목을 죄어들고 있다"
고 경고했다.

무역적자가 날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의 수지도 악화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대출조건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상서롭지 않은 징조라는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미국의 경기침체는 금융
쪽에서의 신용경색과 궤를 같이 해 왔다"며 "지금 바로 그같은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경기침체론은 지나친 엄살일 뿐 미국경제의 앞날은 여전히 순탄할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도널드슨 러프킨 앤드 젠레트 증권의 경제분석가 마릴린 셰이저는 "경기
침체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낙관론자들도 한가지 점에서는 비관론자들과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것은 "아시아 변수"다.

아시아 경제위기가 현재와 같이 방치되는 한 미국도 언젠가는 스스로의
발등을 찍힐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