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금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조조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 기업 등 각 분야의 구조개혁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시련을 주고 있다.

과연 구조조정은 올바른 방향으로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언제쯤 끝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의문을 풀기위해 경제학계의 원로 박승 교수의 의견을 들어본다.

박 교수는 구조조정은 모든 분야의 낡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전면
개혁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우선 구조조정이 지나치게 실물경제를 무너뜨리지 않고 진행
되도록 거시정책을 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치 행정 등 비시장부문의 개혁은 속도를 다그치고 시장기능에 의해
움직이는 경제의 개혁은 순리적이고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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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 : 한국경제 ]]

박승 < 중앙대 교수.경제학 >

우리경제의 위기는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실패에서 기인한다.

환경의 변화가 좀더 서서히 왔든지, 아니면 우리의 적응속도가 좀더
빨랐다면 오늘의 위기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 위기는 왜 왔는가 -

지금까지 우리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성장시스템은 초기적 압축성장 모형
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뒤떨어져 있는 후발자가 선발자를 따라잡는데 유용한 모형이다.

앞서간 나라들이 1백년 이상 걸린 일을 30~40년동안에 해내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과 관계의 생략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자기자본의 축적을 기다리지 않고 외자를 도입해 차입성장을 했던
것이며 민간 스스로의 추진능력을 기다리지 않고 정부가 성장을 주도했던
것이다.

이러한 성장 구도에서 대기업 은행 정부는 하나가 되어 중심 축을 이루었다.

대기업은 빚으로 크면서 경제성장을 앞에서 이끌고 은행은 그 빚을 대주고
정부는 은행으로 하여금 그 빚을 대주도록 했다.

이같은 경제발전의 모든 기획과 연출을 맡은 것이 정부였다.

우리는 이 연결고리를 정경유착 또는 관치금융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성장시스템은 그동안 저임금과 산업보호라는 2가지 힘에 의해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저임금의 힘으로 수출산업의 경쟁력이 확보될 수 있었다.

차입성장을 가능케 한 것도 저임금이었다.

차입성장은 금리부담을 크게 했지만 이것을 커버해 준 것이 바로 저임금
이었다.

또 금융 농업 서비스 도소매업 등 내수산업은 경쟁력이 형편없이 낮아서
노동생산성이 선진국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들 내수산업이 계속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보호 때문
이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갑자기 고임금및 개방시대로의 환경변화가 일어나면서
한국의 성장시스템은 무너져버렸다.

지난 10년동안 선진국들의 임금이 30% 오르는 사이 한국의 임금은 3배로
뛰었다.

이 때문에 수출이 경쟁력을 잃었을 뿐 아니라 무거운 금리부담을 덮어줄
힘이 없어져 차입성장도 불가능하게 됐다.

게다가 갑작스레 밀어닥친 개방체제는 국민총생산(GNP)의 7할을 차지하는
내수산업을 일시에 무너뜨렸다.

또 개방에 따른 국제투기자본의 자유이동은 경쟁력이 취약한 나라와 산업을
찾아다니며 넘어뜨리는 행동대의 역할을 수행했다.

오늘날 아시아와 한국의 위기는 이렇게 해서 유발된 것이다.

개방체제로의 급격한 이행은 세계 경제력을 보호지역인 아시아에서 개방지역
인 미국으로 이동시키는 작용을 했다.

특히 금융산업분야에서 미국과 아시아 사이의 엄청난 경쟁력 격차는 위기
촉발의 촉매제가 됐다.

- 구조조정의 과제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1~2년안에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국제수지만 안정되면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지금 국제
수지는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한국경제가 성장 활력을 되찾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경제가 성장 활력을 되찾아 일류 선진국으로 새출발할 수 있게 하려면
고임금및 개방시대에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성장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것은 부분적인 땜질로 될 일이 아니다.

엔진 자체를 대체해야 한다.

그것은 모든 분야에서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꾸는 전면 개혁이라야 한다.

우리는 이를 지금 "구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 고임금및 개방시대에 경쟁력을 갖는 성장시스템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구조조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로 인력과 조직의 군살을 떼어내는 일이다.

우리사회의 모든 조직은 사람이 남아돌고 임금이 싼 시대의 틀로 짜여져
있다.

이것을 감량 조정해야 한다.

둘째 차입성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매출액에 대한 금리 부담률이 경쟁국 기업은 1~2%인데 반해 한국기업은
6% 수준이다.

이러한 차입성장이 그동안 가능했던 것은 높은 투자수익률과 저임금
덕택이었다.

이제 그러한 시대는 지나갔다.

셋째 요소투입성장에서 요소 효율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동안은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의 투입을 늘려 경제성장률을
높여 왔다.

그러나 노동력은 부족하고 차입성장은 불가능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제 경제성장은 노동력과 자본의 효율에 따라 결정되는 시대가 됐다.

다시 말해 양보다 질의 시대, 그리고 기술과 생산성이 승부를 가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끝으로 모든 산업, 모든 부문,모든 조직이 경쟁력을 가져야 하며 그렇지
못한 것은 퇴출되는 질서가 확립돼야 한다.

개방질서가 보호질서와 다른 점은 경쟁력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개방의 물결에 너무나 많은 것이 취약부문으로 노출돼 버린
한국은 경쟁력 없는 부문의 퇴출에 따른 고통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기업과 정부 그리고 모든 사회주체들이 이러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게 되면
국민생활은 어떻게 되는가.

가계와 근로자는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실업이 늘고 실질임금이 하락할 것이다.

불황이 깊어지고 생활수준의 하향조정도 불가피할 것이다.

이러한 고통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이같은 고통은 경제위기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양면성이 있는 필요악이다.

따라서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 당면 정책의 방향 -

그러면 이러한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수행하기 위해 당장 우리가 해야할
일은 어떤 것인가.

첫째 경제의 구조조정이 지나치게 실물경제를 무너뜨리지 않고 진행될 수
있도록 거시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금융경색이 일어나지 않도록 통화를 충분히 공급하고 금리를
내리는 인플레 정책을 써야 한다.

그동안의 과잉 긴축정책은 필요 이상의 기업 도산과 금융 부실을 유발해
위기에 대응함에 있어 사회적 부담을 너무 크게 했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최근 통화확대 쪽으로 경제정책을 전환한 것은 잘한
결정이다.

둘째 경제위기의 뇌관은 금융 부실이며 따라서 경제위기를 푸는 실마리는
금융 부실을 다스리는데서 찾아야 한다.

금융부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금융경색이나 국가신용도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또 어떤 경기대책도 실효를 거둘 수 없다.

이 점에 대해선 정부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으로 인한 손실을 해결해 주는 노력이 크게
미흡하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증자나 합병 또는 부실채권의 싯가매입(예컨대
무담보 대출채권을 성업공사가 3% 가격으로 매입) 등 어떤 조치도 근본대책
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정치와 행정 등 비시장부문의 개혁은 속도를 다그치고 시장기능에
의해 움직이는 경제의 개혁은 순리적이고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오히려 반대방향이었다.

IMF의 초긴축.초고금리 처방, 금융기관의 회계기준이나 건전성 기준 등을
하루아침에 선진국 수준으로 요구한 점, 현재 5백%가 넘는 대기업의 부채
비율을 내년까지 2백%로 낮추라는 것 등 과격한 정책이 그 예다.

반면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는 문제 등 정치개혁이나 행정개혁은 그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넷째 구조조정과 경기대책이 상충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경기대책은 구조조정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구조조정을 통화확대 쪽으로 부작용이 작게 추진함으로써
구조조정을 통해 돈이 풀려 나오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경기대책이다.

이런 점에서 구조조정을 거치지 않고 돈을 직접 내수진작에 쏟아붓는 것은
효율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구조조정을 통해 돈을 푼다는 것은 금융개혁 자금, 구조조정 지원자금,
기업 생산자금, 실업대책비 등으로 지출함을 뜻한다.

끝으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개혁과 구조조정은 경제나 정치에 국한
되어서는 실효가 없다.

국민의 생활개혁과 의식개혁이 수반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출범한 "제2의 건국운동"은 기필코 성공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