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경제 시스템에 대한 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이들 기구가 경제위기 확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난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제연합(UN)이 세계 경제위기 해결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코피 아난 UN사무총장은 최근 LA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아시아 등의 금융
위기는 단순한 경제.금융 분야의 문제가 아닌 사회.정치시스템 전반과
관련된 것"이라며 "UN만이 이를 해결할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선진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현재의 경제시스템은 선후진국들이
공동으로 경제문제를 협의하는 협력의 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특별 기고문을 정리한다.

< 정리=한우덕 기자 woody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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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경제 위기와 UN의 역할 ]

아시아 경제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위기 해소를 위한 다양한 대책도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접근 방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대부분 해법이 아시아 위기를 단순한 경제 금융상의 문제로만 접근하고
있다.

이는 잘못된 방법론이다.

아시아 경제위기는 수백만명의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일상 생활을 파괴하고
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아시아 위기의 본질은 이런 사회적 관점에서 재조명되지 않으면 안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만5천여명의 근로자들이 매일 직장을 잃고 있다.

그들은 가난과 기아에 직면하고 있다.

굶주림, 사회 불안, 폭동, 인권침해 등은 이제 이들의 일상 생활이 됐다.

개발도상국들은 그러나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토론의 장에서
소외되어 있다.

그들은 국제적인 경제 사회적 의사결정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이같은 무력함이 또다시 주민들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채무상환 조건 완화 등 아시아 경제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적인 대응책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대책 마련의 핵심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될 주제가 인권이다.

우리는 모두 이 중대한 문제를 놓치고 있다.

물론 서방선진7개국(G7)의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시아인들의 인간 존엄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다할 수는 없다.

국제 사회의 모든 관련 기구 및 단체들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새로운 국제 금융체계 설립을 위해 폭넓은
논의를 제안했다.

물론 국제금융 체제를 개편하고 토론하는 무대가 국제연합(UN)일 수는 없다.

이 문제는 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국제결제은행(BIS) 등 전문 기구의 몫이다.

그러나 UN은 세계 모든 국가들이 가입하고 있는 유일한 국제기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UN도 아시아의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

경제.금융분야 해결책은 세계적인 정치시스템 내에서 마련돼야 하고 또
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다.

UN은 세계 정치시스템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는 기구다.

UN을 통해 대책을 마련해야 보다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장기적으로 볼때 세계화(Globalization)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세계화는 지구촌 주민들을 더욱 친근하고 가깝게 만들어 준다.

생산성을 높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환경문제 등 공동 관심사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같은 혜택이 세계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에게 "장기적인 기대"는 단순한 환상으로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아직도 수천수억의 사람들은 고립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 경제의 주변부에 놓여 있다.

이들은 세계화에서 기회를 찾지 못했다.

세계화는 오히려 그들의 생활을 압박하고 고유 문화를 침해하는 파괴적인
역할을 했다.

그동안 자본자유화로부터 많은 혜택을 누렸던 일부 선진국 조차 지금은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들은 민족주의 고립주의로의 회귀 유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개발도상국들은 그러한 조치를 거부당하고 있다.

위기는 국가마다 다른 양상을 보인다.

또 각 나라는 위기를 배태한 고유한 원인을 갖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위기극복 대책도 각 나라의 상황에 맞춰야 한다.

위기의 일부는 사회 정치시스템에서도 찾아야 한다.

UN은 모든 국가에 공평하게 적용되는 룰에 입각해 세계적인 위기 대응책을
만들어야 하는 책무를 갖는다.

UN은 특정 국가가 위기 극복을 위해 세계적인 가치와 어긋나는 조치를
취하지 않도록 해야할 책무가 있다.

지금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UN 회원국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원칙을 찾을 필요가 있다.

UN헌장 국제인권선언 등은 그 원칙이 될 수 있다.

위기 해결책은 이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마련돼야 한다.

특히 UN은 위기로 시달리고 있는 국가들을 옹호해야할 책임이 있다.

UN은 아프리카의 약소 국가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채권국가들은 종종 채무국의 "도덕적 해이(모럴헤저드)"를 이유로 채무상환
연기 등의 구제책을 거부한다.

채무자들의 투명성이 없다는 지적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채권자들 역시 자금 대여자로서의 책무를 외면하는 도덕적 해이에
빠져있다.

예를 들어 보자.

인도네시아의 7살 어린이는 자금 대여 계약이 체결됐던 8년전에는 태어
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바로 지금 그 어린이가 고통받고 있다.

이 아이는 기아에 시달리며 초등학교 진학조차 위협받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8년전 계약된 채권을 모두 상환하라고 독촉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해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위기에 처한 국가들이 종전보다 더욱 많은 이자를 지불해야만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보다 정밀한 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채권국이나 채권금융
기관들이 위기를 빌미로 더욱 많은 이익을 본다는 것은 넌센스다.

많은 국가들은 현재의 세계 경제체제 하에서 그들의 이익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세계 경제체제는 이미 선진국이 된 몇몇 국가들의 목소리에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UN은 위기로 시달리고 있는 국가들에게 공평한 자격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대화의 광장을 제공하고 있다.

UN은 모든 회원국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UN은 이제 세계화의 혜택이 고루 돌아갈수 있도록 하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또 해결책 마련에 적극 참여,위기로 시달리고 있는 국가들을 보호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세계화를 위한 UN의 노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UN은 세계화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 왔다.

우리 모두는 현재의 위기에 대한 책임이 있다.

UN과 함께 문제 해결을 모색함으로써 더욱 신뢰성있고 적법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 LA타임스 신디케이트 독점전재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