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빈 방일 이틀째인 8일 김대중 대통령은 오부치 게이조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데 이어 경제단체 오찬과 일본 의회에서 연설하고 총리주최
만찬에 참석하는 등 방일 기간 중 가장 중요하고 바쁜 하루를 보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저녁 일본 총리관저 연회장에서 오부치 총리 주최로
열린 만찬에 참석, 정상간의 우의를 거듭 다졌다.

오부치 총리는 만찬사에서 "본인을 가리켜 한국의 한 언론이 "시골 교장
선생님" 같은 인물이라고 평한 일도 있다"며 "이는 본인에 대한 한국인
벗들의 따뜻한 평가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오부치 총리에게 "경천애인"이란 글씨를 써줬는데 총리가 이
글에 담긴 뜻을 정치적 신조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통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우의를 과시하기도.

<>.김 대통령은 이날 오후 숙소인 영빈관에서 모교인 목포상고의 담임
선생이었던 무쿠야마 이사부로(80) 선생을 56년만에 다시 만났다.

김 대통령은 접견실 입구에 서서 미리 옛 은사를 기다리다 반갑게 인사하며
자리로 안내한 뒤 환담했다.

무쿠야마 선생은 나이가 들어 귀도 안들리고 기억도 좋지 않아 대통령에게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편지를 써왔다며 품속에서 편지를 꺼내와 일본어로
읽었다.

무쿠야마 선생은 "국빈 방문한 김 대통령을 영빈관에서 만나게 된 것을
생애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목포상고 담임으로 부임했을 당시
김대중 소년은 아주 예의바르고 머리가 좋았으며 웅변을 잘해 정치가의
소질을 갖추고 있었다"고 회고.

김 대통령은 무쿠야마 선생이 한국에서 결혼했던 사실을 회상하며 자녀들의
안부를 물은 뒤 "무쿠야마 선생이 하숙비도 대준 적이 있다"며 고마움을
표시.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숙소인 영빈관에서 우리측 임동원 외교안보
수석, 문봉주 외교통상부 아.태국장 및 일본 외무성의 노보루 세이치로
외정심의실장, 아나미 고레시게 아주국장 등을 배석시킨 가운데 오부치
총리와 곧바로 한일 단독정상회담에 들어갔다.

두 정상은 평소에도 잘 아는 사이인데다 전날 천황 주최 만찬에서 만난
탓인지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과거의 양국 관계를 돌이켜 보고 현재의
우호협력 관계를 재확인했다고 배석자들이 전했다.

단독회담을 끝낸 두 지도자는 양측 공식수행원이 미리 대기중인 옆 회담장
으로 자리를 옮겨 확대 회담을 진행했다.

1시간 동안 계속된 회담에서 참석자들은 양국 정상이 합의한 공동선언의
정신과 내용 등을 검토했다.

양국 정상은 이어 서명식장으로 자리를 옮겨 한국어와 일어로 작성된 공동
선언문에 공식 서명했다.

양측 배석자들은 김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가 서명을 마치고 협정문안을
교환하자 공동선언의 정신이 제대로 구현되기를 기원하며 기립 박수를
보냈다.

<>.김 대통령은 경제단체연합회와 일본경영자단체연맹 경제동우회
일본상공회의소 일본무역회 일한경제협회 등 6개 경제단체가 주최한 오찬에
참석하는 등 "세일즈 외교"에도 적극 나섰다.

김 대통령은 "중.장기로 전환된 한국의 단기 외채 가운데 일본자금이 무려
37%에 달했다"며 "외채 만기연장에 앞장서준 일본측의 지원을 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국회를 방문,참의원 회의장에서 양원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설을 했고 12차례 박수가 나왔다.

의원들은 김 대통령 입.퇴장시 기립박수를 보냈다.

김 대통령은 "동경 납치사건과 사형선고 등 수없이 생명을 잃을 뻔 했던
내가 이제 대통령으로 이 자리에 서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감회를 피력했다.

김 대통령은 국회연설 직후 참의원 의장실로 이동, 이토 소이치로 중의원
의장과 사이토 주로 참의원 의장 등 양원 간부 40여명과 간담회를 가졌다.

<>.한.일 양국은 이날 발표된 공동선언문에 사용된 용어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는 후문.

공동선언문중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문장
에서 "안겨주었다"는 표현은 일본측 주장이 관철됐다.

한국측은 "안겨준데 대해"라고 직접적인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일본측이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는 것.

또 일본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추진에 대한 한국의 지지 의사를
선언문에 넣자고 요청한 것도 논란이 됐다.

일부 일본 언론은 지지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도하기도 했지만 한국측은
민감한 사안임을 감안,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며 "국제사회에 대한 일본의
기여와 역할이 증대되는데 대한 기대를 표명한다"는 수준으로 문장을
다듬었다.

< 도쿄=김수섭 기자 soosu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