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기차여행..서정원 <대양바이오테크(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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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otech@chollian.dacom.co.kr >
필자는 업무관계로 지방출장이 잦은 편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며 그중에서도 기차를
즐겨 탄다.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킬 수 있다는 점 외에 기차 안에서 밀린 업무를
정리하거나 강의 준비 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은 그것보다 도시락을 사먹으며 한가로이 차창밖의 시골풍경을 보는 것이
더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고향은 상주에서 오십여리 떨어진 곳에 있는 화남면 소곡리
맹골이라는 산골 마을이다.
초등학교때 할머니를 따라 부산에 계시는 작은 아버지를 뵈러 간 적이 있다.
집에서 한 오리쯤 걸어가면 간이 버스 정류소가 있고 그곳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오십리쯤 가면 황간역이 나온다.
그때 기차를 처음으로 봤다.
왜 그렇게도 길고 기적소리가 큰지 놀라 가슴이 두근거린 기억이 난다.
차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신기하기만 했고 왜관쯤 지났을 때
앞자리에 앉은 분이 나눠준 사과는 어찌 그리 맛있던지...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기차를 탈때마다 그 옛날의 추억들이 문득 문득
스쳐지나간다.
옆자리가 비어 있기라도 하면 어떤 사람이 탈지 궁금해진다.
멋진 사람이 옆에 타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대개는 술에 취해서
앉자마자 코를 골며 자는 중년의 남자, 짐꾸러미를 잔뜩 들고 와서는 양해
한마디 없이 털썩 주저앉는 아줌마, 누가 어떻게 할까봐 그러는지 힐끔 쳐다
보고는 옆에 앉아 눈을 감고 모른척하는 새침데기 아가씨 등 뿐이었다.
지난 7월 중순 영주에서 제천을 거쳐 조치원으로 갈 일이 있었다.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해서 옛날의 추억을 생각하며 비둘기호를 탔다.
의자가 마주보게 되어있는 좌석에 그날도 혼자 앉아 있었다.
몇 정거장쯤 지난 후에 칠순은 됨직한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 두분이 양손에
짐을 잔뜩 들고 배낭까지 메고 기차에 올랐다.
땀을 닦으며 내려놓는 배낭 옆으로 옥수수 수염이 비죽이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농사 지은 것을 가지고 도회지에 사는 자식들에게 가는 길인 것 같았다.
필자가 시원한 캔맥주와 안주 음료수를 사서 함께 마시자며 드렸더니 너무
고마워했다.
우린 그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자식들 공부시켜 모두 출가시키고 시골에서 단둘이 산다고 하면서 올 가을에
아이들을 데리고 꼭 놀러오라며 몇번이고 다짐하던 그분들이 생각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9일자 ).
필자는 업무관계로 지방출장이 잦은 편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며 그중에서도 기차를
즐겨 탄다.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킬 수 있다는 점 외에 기차 안에서 밀린 업무를
정리하거나 강의 준비 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은 그것보다 도시락을 사먹으며 한가로이 차창밖의 시골풍경을 보는 것이
더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고향은 상주에서 오십여리 떨어진 곳에 있는 화남면 소곡리
맹골이라는 산골 마을이다.
초등학교때 할머니를 따라 부산에 계시는 작은 아버지를 뵈러 간 적이 있다.
집에서 한 오리쯤 걸어가면 간이 버스 정류소가 있고 그곳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오십리쯤 가면 황간역이 나온다.
그때 기차를 처음으로 봤다.
왜 그렇게도 길고 기적소리가 큰지 놀라 가슴이 두근거린 기억이 난다.
차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신기하기만 했고 왜관쯤 지났을 때
앞자리에 앉은 분이 나눠준 사과는 어찌 그리 맛있던지...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기차를 탈때마다 그 옛날의 추억들이 문득 문득
스쳐지나간다.
옆자리가 비어 있기라도 하면 어떤 사람이 탈지 궁금해진다.
멋진 사람이 옆에 타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대개는 술에 취해서
앉자마자 코를 골며 자는 중년의 남자, 짐꾸러미를 잔뜩 들고 와서는 양해
한마디 없이 털썩 주저앉는 아줌마, 누가 어떻게 할까봐 그러는지 힐끔 쳐다
보고는 옆에 앉아 눈을 감고 모른척하는 새침데기 아가씨 등 뿐이었다.
지난 7월 중순 영주에서 제천을 거쳐 조치원으로 갈 일이 있었다.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해서 옛날의 추억을 생각하며 비둘기호를 탔다.
의자가 마주보게 되어있는 좌석에 그날도 혼자 앉아 있었다.
몇 정거장쯤 지난 후에 칠순은 됨직한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 두분이 양손에
짐을 잔뜩 들고 배낭까지 메고 기차에 올랐다.
땀을 닦으며 내려놓는 배낭 옆으로 옥수수 수염이 비죽이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농사 지은 것을 가지고 도회지에 사는 자식들에게 가는 길인 것 같았다.
필자가 시원한 캔맥주와 안주 음료수를 사서 함께 마시자며 드렸더니 너무
고마워했다.
우린 그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자식들 공부시켜 모두 출가시키고 시골에서 단둘이 산다고 하면서 올 가을에
아이들을 데리고 꼭 놀러오라며 몇번이고 다짐하던 그분들이 생각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