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금융위기에는 데이터(정보)의 부족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지적됐다.

또 한국이 제2의 외환위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IMF(국제통화기금) 등이
요구하고 있는 정보제공 요건을 충족해야 할 것으로 제시됐다.

미 한국경제연구원 소장을 역임했던 존 베넷은 최근 인터넷잡지인
"이코노믹퍼스펙티브즈"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는 것을 채무자의 일방적 의무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보의 공개를 통해 채권자 채무자의 양당사자는 물론 각국 정부와 국제
기구 전체가 자산부채 관리를 효율화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국 정부가 작년 가을 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을 때 국제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단기 채무의 규모였다.

당시 국제금융기관들은 물론이고 국제기구들중 아무도 한국의 외체 규모에
대해 정확한 내역을 산출하지 못했다.

한국은 수주일이 지나서야 비로서 외채규모를 공개했고 국제통화기금(IMF)
와의 협의를 거쳐서야 외채 규모가 확정되었다.

이같은 불확실성은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또 위험도가 높은 곳에 투자했던 한국인 스스로에게도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한국의 외채 규모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수주일동안 사실 한국은 치루지
않아도 좋을 비싼 댓가를 치뤘다.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었고 이는 결국 급격한 원화가치 하락을
부채질해 금리 급등, 기업 및 은행의 도산, 실업 증가 등으로 이어졌다.

사실 외환위기 마지막 수주일동안 한국을 빠져 나간 외화중 상당부분은
만일 한국이 보다 투명한 정보관리를 했다면 그자리에 머물러 있었을 가능성
이 높은 그런 자금들이었다.

이는 정확한 경제 데이터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해 준다.

IMF는 지난 94~95년 발생한 멕시코 위기 직후 회원국을 소집, 각국에
정확한 경제 데이터를 제출토록 했다.

IMF는 96년 특별 데이터공표규칙(SDDS)을 제정, 실시했다.

이 규칙은 각 회원국이 IMF의 인터넷 웹사이트에 경제 및 금융 데이터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일반데이터공표시스템(GDDS)을 만들어 각국의 데이터 수집 및 공표를
지원했다.

지난해까지 이들 시스템은 비교적 잘 운영돼 왔다.

그러나 이런 장치들은 특정 국의 외환사장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정밀하지 못했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왔을 때 기존의 제도적 장치로는 충분한 데이터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시장에 대한 고전적인 개념정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시장은
정보가 있어야만 제대로 기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정보 빈곤은 많은 분야에서 문제를 야기시킨다.

경제 전문가들은 위험을 "수익성을 보장하는 것"과 "수익성이 전혀 보장
되지 않는 것"으로 구분한다.

전자의 경우 손실이 발생하는 경로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어 어느 정도
까지는 위험회피가 가능하다.

그러나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리스크는 예상을 벗어나 갑자기 발생한다.

이는 통상적인 위험관리의 범주 밖에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발생한 손실은 정상적인 예측 범위내에서는 결코 예상할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IMF는 이같은 악성 리스크를 줄이는 국제 시스템이다.

아시아 사태는 외자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특히 단기외채는 그것을 들여오는 목적이 단시간내에 해결될 때만 들여와야
한다.

다시말해 투자 기간및 상환 기간이 모두 차입 기간에 일치(match)되어야
한다.

아시아 위기 이전까지 만해도 단기외채 금리는 중장기 외채보다 낮았다.

또 단기외채를 빌리거나 연장하는데 어려움이 많지 않았다.

정부는 환율을 조정하거나 상환을 보장하면서 단기 외채 차입을 부추겼다.

그러나 정부가 무한한 상환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정부의 보증
에는 한계가 있다.

많은 아시아 은행들은 적지 않은 부실채권을 안고 있다.

채무은행중에는 합의된 이자를 갚지도, 원금을 상환할 능력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은 심각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채권은행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차입자들이 문제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해당국 정부의 지급 보증이라는 지극히 허술한 장치를 믿고 돈을 빌려 줬다.

IMF는 이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각국의 경제상황에 대한 보다 정확한
데이터를 원하는 것이다.

과도한 채무는 금융기관들 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들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

많은 아시아 기업들은 자기 자산의 5배이상 되는 부채를 안고 있다.

또 상호지급 보증등 자본 계정의 부풀리기를 감안하면 부채비율은 6백%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물론 경제가 계속 활기를 띠고 기업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고 있을 때는
이 모든 것이 덮혀져 은폐된다.

그러나 수익성이 악화되기 시작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자부담은 눈덩이 처럼 불어나고 기업은 자멸의 길로 들어선다.

부채를 갚을 여력은 급속히 줄어들어 뒤늦은 후회를 하지만 이미 때가
늦어서야 상황이 파악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주주들에 대한 배당
축소하는 일이지만 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시아 기업들은 더욱이 부채를 갚기 위해 또다른 부채를 끌어온다.

이것이 수익성 악화의 범위를 넘어설 때 기업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

따라서 기업들도 국제 기준에 적합한 회계 자료를 갖고 있어야 한다.

국제 채권자들은 기업의 정확한 정보를 원하고 있다.

그들은 기업에 대한 대출에 앞서 판단 자료를 요구한다.

정부는 자금 도입을 위해 어떤 데이터가 필요한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모든 이해당사자들에게 정보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IMF의 데이터는 모든 채권자들이 공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채무자들이
도작적인 차입관행을 끊을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각국 재무부와 은행 신용평가기관 등은 IMF 데이터를 일정한 잣대로 해서
다양한 위기 상황을 피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하더라도 금융에 따르는 리스크를 완전히 회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같은 파국적인 충격은 피할 수 있다.

< 정리=한우덕 기자 woody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