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대목인데 고객수가 예년 평일만도 못해요.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매출은 오히려 줄고 있어요. 도대체 말이 됩니까"

남대문시장에서 가방장사를 하는 이용철씨(43)는 추석경기를 묻자 울분부터
터뜨렸다.

추석을 아흐레 앞둔 26일 밤,이씨는 가게앞에서 줄담배만 태우고 있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손님, 어쩌다 가격만 묻고 돌아서는 고객들..

가게문을 열어 놓곤 있지만 도무지 신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27일 0시30분 지하철 회현역앞 퇴계로.

지방상인들을 싣고 올라온 차량들이 길 양쪽에 줄지어 서 있고 교통경찰들
이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나 예년의 추석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왕복 6차선중 4개 차선이 거의 열려 있다.

차량들은 시속 30~40km로 달린다.

예전 같으면 자정이후엔 평일에도 5km를 넘지 않았고 대목엔 아예 주차장
으로 변했던 곳이다.

인근 부인복상가.

점원은 30여명인데 손님은 서너명 뿐이다.

점원들은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거나 팔장만 낀채 물끄러미 행인들을
쳐다보고 있다.

한 점원은 "마수거리도 못하는 날이 허다하다"며 짜증을 냈다.

새벽 1시 동대문시장.

대화호텔 앞 사거리가 차량으로 꽉 막혔다.

지방상인들을 싣고 올라온 버스도 눈에 띈다.

평일에 비해서는 분명 차량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상인들은"예전에는 평일에도 이 정도는 됐다"며 반박한다.

숙녀복상가 팀204의 한 상인은 "지방에서 올라온 차량이 평소보다
늘었다지만 매출은 여전히 예년 평일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추석대목에도 찬바람이 가득한 것은 재래시장 뿐이 아니다.

재래시장보다 낫다고 쳤던 백화점 할인점들도 한산하기 짝이 없다.

추석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다.

그럴듯한 이름을 걸어놓고 고객잡기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지만 매출은
작년 추석때보다 10~30% 줄었다.

일요일인 27일 오후1시 한국은행앞 사거리.

피서철 대낮을 연상시킬 만큼 한산하다.

인근 남대문시장 옆길부터 상수도공사를 하느라 굴삭기로 도로를 파헤치고
있는데도 도무지 길이 막히지 않는다.

롯데백화점 메트로미도파 앞도 마찬가지다.

신세계백화점의 판매사원 도수복씨(24)는 "해마다 추석직전 일요일엔 매장
마다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면서 "올해는 문득문득 평일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한산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추석 열흘전을 기준으로 한 주간 매출이 작년보다 31.3%
줄었다.

신세계 역시 매출이 14.6% 감소했다.

롯데는 대대적으로"브랜드 세일"을 펼쳐 간신히 작년 수준까지 올려놓았다.

지방 소재 백화점들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현대백화점은 울산 광주 등 지방점들의 매출이 작년 추석때보다 37.6%나
줄었다.

백화점업계는 본격적으로 대목경기가 시작되는 이번주 매출을 더 걱정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추석 열흘전부터 매출이 급상승커브를 그렸지만 올해는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대량구매 고객들의 전화는 예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통업체 관계자들은"실업증가등 경제, 사회적 불안요인이 많아 큰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올 추석은 너무 죽을 쑤고 있다"며" 결국 올 한해 장사는
예년의 반토막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김상철 기자 cheol@ 김광현 기자 k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