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의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50여년간 유지돼온 "불경기는 있어도 망하지는 않는다"는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IMF 체제로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가운데 기술과 자본에서 앞선 다국적
제약업체들이 물밀듯 국내에 진출하고 있다.

자생력 없는 업체는 무대뒤로 사라지고 있다.

올해는 제약산업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의 쓴맛을 맛봐야 할 판이다.

이제 4백여 국내 제약업체들은 생존을 위한 탈바꿈을 강요당하고 있다.

제약업계에 기존의 인식과 틀을 깨는 혁신의 파고가 점차 거세지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거품경제속에서 타업종으로 외도했거나 사업다각화라는 이름 아래 무분별한
확장정책을 펴 온 제약업체들은 본업으로 회귀하고 있다.

인수합병과 전략적 제휴 등 눈에 띄는 합종연횡도 일어나고 있다.

고질적인 유통 난맥상을 뜯어고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특히 주목해야할 점은 이러한 변화가 생존을 위한 임시방편이나 일과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만큼은 사뭇 비장한 분위기라는게 업계 자체의 평가다.

제약업계엔 경영슬림화와 경비절감, 수출에 성공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위기감마저 돌고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기술력으로 우위를 확보해야한다는데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여기에 신약을 창출하면 금상첨화.

보일듯 말듯 아득한 신기루를 현실화하기 위해 연구소의 불빛은 다시
환하게 밝혀졌다.

지난 연말부터 금년 1.4분기까지 국내제약업체들이 직면한 최대의 과제는
현금 유동성 확보였다.

금융경색으로 흑자도산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이 업계를 엄습했다.

물론 지금도 "부도공포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영상황이 차츰 안정되면서 구조조정 작업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사업부문을 잘라내고 유휴인력을 줄이고 있다.

IMF고개를 넘기 위해 <>전략적 제휴 <>신약개발 <>수출 확대 <>물류비 절감
<>이벤트 마케팅 등의 전략도 펼치고 있다.

종근당과 유한양행은 일찍이 인원을 감축해 경영슬림화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

지난 96년부터 각각 5백여명, 4백여명씩 유휴인력을 줄이고 신규채용을
억제했다.

1인당 매출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종근당 같은 경우 지난 연말 연구 및 영업인력 40여명을 충원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동아제약의 구조조정도 강도 높기로는 여타 회사에 못지 않는다.

동아바이오테크 명미화장품을 외국회사에 넘겼고 안양공장부지를 매각했다.

부채비율이 3백%에서 2백%로 떨어져 경영 안정이 기대되고 있다.

드링크 및 일반의약품으로 성장해 온 경영전략도 1백80도 수정, 10여개
신약개발 아이템을 새로 설정하는 등 전열을 가다듬었다.

특히 지난 3월 유한양행과 골다공증치료제를 공동개발하기로 협약을 맺은
것은 제약업계 사상 최초의 "적과의 동침"으로 기록된다.

보령제약은 새해 벽두부터 상무급 이상 전임원을 팀장으로 임명, 계급장을
떼고 새로 시작하는 각오로 나섰다.

별실로 운영되던 임원 집무실을 없애고 사원들 옆에 칸막이를 해놓은 장소로
옮겼다.

그 결과 회사 분위기는 아연 달라졌다.

경비 절감을 위해서는 물류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하고도 최선의 방안.

이에 따라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한 전략적 제휴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먼저 의약품사업부를 두고 있는 제일제당이 의약품 물류유통의 전문화를
선언했다.

자회사인 씨제이 지엘에스(CJ-GLS)는 동국제약 한국존슨 일동제약
일양약품과 물류대행계약을 맺었다.

또 동아제약 계열의 용마유통이 40여 제약사의 의약품을, 동원산업이
제약업체의 식음료제품을 각각 물류 대행하면서 물류비용을 20~40% 절감하고
있다.

내수와 달리 수출전선에는 활기가 돌고 있다.

녹십자를 비롯 유한양행 제일제당 LG화학 종근당 삼천리제약 등이 항생제
원료 에이즈치료제원료 백신 혈액제제 등의 수출물량을 늘리고 있다.

환율상승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올해는 작년에 비해 40% 가량 수출이 늘 것으로 기대된다.

대웅제약은 불황탈출 전략의 하나로 이벤트 마케팅을 펼쳐 성공사례를
일궈냈다.

치질약 "페리바" 어린이 영양간식 "영양젤리" 기능성스포츠음료 "에너비트"
등을 이런 방식으로 판매해 50% 이상의 매출신장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제약업체의 성패는 신약개발에 달렸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신약 및 신제품 개발의 열의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올 연말이나 내년초쯤에는 국산신약 1호가 탄생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예상이다.

현재 SK제약 동아제약 유한양행 중외제약 등이 국산신약 1호의 영예를 놓고
불꽃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제약시장의 규모는 연간 9조원 수준.

세계 10위권에 육박할 정도의 거대시장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전혀 외형에 걸맞지 않다.

타사 주력 제품을 모방하기 일쑤고 외국제품을 들여와 손쉽게 장사하는
관행이 굳어져 있으며 과당경쟁으로 제살 깎아 먹는데 익숙해 있다.

이런 가운데 연구개발은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던 것이 한국제약업계의
부인할 수 없는 자화상이었다.

눈앞의 IMF는 그 죄과를 톡톡히 치르게 하고 있다.

그리고 자생력을 키울 것을 일깨우고 있다.

업계가 이 교훈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것인가는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 정종호 기자 rumba@ >

[[ 주요 제약사 구조조정 현황 ]]

<>동아제약 : 한국후지사와의 지분 30% 일본 후지사와에 매각(98.2.28)
<>동화약품 : 살충제(홈키파)라인 한국크로락스에 매각(98.6.18)
<>동아제약 : 계열사 명미화장품 지분50% 독일 웰라에 매각(98.7.31)
<>삼성제약 : 살충제(에프킬라)라인 한국존슨에 매각(98.8.12)
<>일양약품 : 하월곡동 사옥 동덕여대에 매각(98.5.30)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