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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니스 인 코리아] '한국피자헛' .. '한국 맛'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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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진출 : 85년 2월 동신식품이 서울 이태원에 피자헛 1호점 개점
    <>91년 : 한국피자헛으로 법인명 변경
    <>93년 : 미국 펩시코가 한국측 지분 인수
    <>96년 : 1백호저(안산점) 개점
    <>98년 9월 : 1백50호전(명동역점) 개점
    <>종업원수 : 3천명(정규직 1천1백명)
    <>주요 메뉴 : 팬피자, 치즈 크러스트 피자, 팝 피자, 스파게티
    <>유통시설 : 기흥냉장창고 언양냉장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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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정오 서울 명동성당 앞.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실직자들에게
    지름 1m50cm 짜리 피자가 전달됐다.

    이 피자는 한국피자헛이 1백50호점인 명동역점 개장을 기념해 만든 것.

    끼니를 거른채 성당 주변을 서성대던 실직자들은 이 피자를 나눠 배불리
    먹었다.

    물론 한국피자헛이 이런 행사를 마련한 것은 자신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피자헛 임직원들에겐 나눔 이상의 의미를 가진 행사였다.

    이들은 행사를 통해 실직의 아픔을 나눠야 한다는 사회적 책무를 깨달았고
    한국피자헛이 이제는 엄연한 "한국기업"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한국피자헛은 미국 펩시코 계열사인 피자헛의 한국법인.

    지난 85년 한국에 들어와 한국인에게 피자를 보급시킨 장본인이다.

    피자헛은 초기엔 서울 이태원에 1호점을 열고 주로 외국인을 상대로 피자를
    팔았다.

    당시만 해도 대다수 한국인들은 피자를 잘 알지 못했다.

    우스갯소리로 "서양 빈대떡"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기성세대의 거부감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들 입맛을 망쳐놓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이 땅에서 김치를 몰아내려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김치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았고 피자는 어른들까지 즐겨먹는
    먹거리가 됐다.

    따지고 보면 피자는 이탈리아 음식이다.

    2차대전후 귀국한 미군 장병들이 "적국 음식"인 피자를 즐겨먹으면서 미국
    전역에 보급됐다.

    피자헛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 58년 20대 초반의 카아니 형제가 어머니한테
    빌린 6백달러로 캔사스주 위치타에 첫 매장을 열며 출범했다.

    이 회사는 40년이 지난 지금 약 80개국에서 피자를 파는 다국적기업이 됐다.

    피자헛이 한국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현지화전략이
    적중했기 때문.

    현재 한국피자헛 임직원 1천1백명(임시직 포함 3천여명)중 외국인은 단
    한명도 없다.

    간혹 미국 본사에서 임원 한두명이 파견된 적은 있지만 본사가 경영을
    간섭한 적은 거의 없다.

    피자를 만드는데 필요한 식자재도 치즈를 제외하곤 모두 국내에서 조달하고
    있다.

    피자헛은 한국에서 번 돈은 대부분 한국에 재투자했다.

    이에따라 한국피자헛의 매장수는 사업 첫해인 85년말 2개이던 것이 10년후인
    95년말에는 95개로 늘었고 이제 1백50개에 달한다.

    한국경제가 위기에 처한 지금 피자헛은 오히려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국경제가 곧 좋아질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

    한국피자헛은 매장을 해마다 30여개씩 개점, 2002년까지 지금의 두배인
    3백개로 늘릴 계획이다.

    한국피자헛 임직원들은 한국의 음식문화와 식품가공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기여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마케팅본부장인 최승현 상무는 "많은 사람에게 맛있고 깨끗한 피자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 김광현 기자 k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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