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이 석유화학 등 7개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계획을 마련한 것은
경쟁력 회복의 걸림돌이 돼온 과잉.중복투자 업종에 대해 기업들이 자율적
으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 이를 계기로 기업 구조조정이 가닥을 잡게 돼 앞으로 금융 및 공공부문
구조조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도 기대된다.

그러나 단일회사의 경영권 문제나 불가피한 정부 지원이 부를 특혜시비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는 5대그룹의 이번 합의에 따라 과잉.중복투자업종에 새로운 경쟁력
을 부여할 수 있게 됐다.

반도체의 경우는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단일회사를 만듦으로써 세계
시장의 15.7%(97년 64MD 기준)를 점하는 2위 업체를 갖게 됐다.

1위인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확실히 선도하게 됐다.

석유화학의 경우 단일 업체로는 아시아 최고 수준인 연산 1백50만t의
유화업체가 출현한다.

정유의 경우도 기존 5사체제가 깨지고 4사체제로 경쟁이 단순화됐다.

2사체제로 단순화된 항공기제작산업이나 단일사 체제로 출범하는 철도차량,
발전설비 분야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애물덩어리"가 "보물단지"로 변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경영환경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업들이 스스로 택했다는
점에서 최선의 선택으로 평가되고 있다.

5대그룹의 구조조정계획은 또 그동안 외자유치 내지 대외매각, 외국기업과의
합작에 등에만 매달려온 기업구조조정이 "대내적인 합의"에 의해 충분히
가능함을 보여준 선례라는 의미도 있다.

김우중 전경련 회장대행도 그동안에도 "구조조정을 외국에만 의지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국내 기업끼리도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이제 그 가능성이 활짝 열린 것이다.

이와 함께 재계가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안을 도출함으로써 경제회생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정부에도 큰 힘을 실어준 것으로도 평가된다.

정부는 여타부문에 비해 기업부문의 구조개혁이 더디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지만 깊숙히 관여할 경우 관치가 살아난다는 비판을 받을까 두려워
전전긍긍했었다.

이런 와중에 기업들이 "알아서" 구조조정계획을 만든 것이다.

정부로서도 후속 지원책을 마련하면서 좀 더 자신감을 갖고 구조개혁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이번 구조조정계획이 완결판은 아니다.

예상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자동차 등 핵심사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반도체의 경우도 경영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단일법인을 만들어 규모의 경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됐지만 과연
"공기업" 비슷한 형태가 된 단일법인 들이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전문경영인들이 소신을 갖고 투자를 밀어붙일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부작용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가 빅딜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마련하는 각종 지원책이 여타 기업에서
특혜시비를 빚을 수도 있다.

단일회사를 만들거나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실업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선 "정리해고"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단일회사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5대그룹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앉아 경제회생책 하나를
도출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공들여 투자해온 회사를 포기하는 경우도, 부채덩어리를 떠안는
결과도 생겼지만 합의를 이뤄 냈다.

5대그룹의 "대타협"이 국제신인도 및 경쟁력제고라는 당면 목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