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는 3일 오전 상의 중회의실에서 자딘 플레밍 한국지점의
스티브 마빈 이사와 미국 컨설팅업체 언스트&영의 대니얼 시 시니어 파트너
를 초청, "해외시각에서 본 한국기업의 구조조정 전략과 향후 전망" 설명회
를 가졌다.

"제2의 금융위기론"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마빈이사는 이날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원화평가절하는 수출진작의 효과는 거두지 못한채 제조업체의
수익성만 악화시키는 부작용만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빅딜에 대해서도 "한마디로 베드딜(bad deal)"이라고 혹평하고 "지금
이라도 정부는 과감한 개혁조치를 통해 신용붕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니얼 시 시니어 파트너도 최근 현대자동차 사태에 대한 정부개입을 비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고 충고했다.

내용을 요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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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마빈 < 자딘플레밍증권 한국지점 이사 >

임금하락, 실업증가, 내수소비 격감 등의 추이를 종합해 볼때 올 하반기
경제상황은 상반기보다 악화될 것이다.

대외무역상황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지난해말부터 엄청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무역흑자의 원천은 수출증가가 아니라 수입격감이다.

수출은 최근들어 더욱더 줄고 있다.

신용장 발행실적도 기록적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따라서 수출이 단기적으로 회복되긴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내수수요 격감, 수출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원화를 평하절하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개인적으로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원화를 절하해도 수출은 진작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의 수출증가 추이와 원.엔 환율을 비교해 보면 원화가 떨어져도
수출이 늘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알수 있다.

수출이 늘어나려면 중간가격대의 한국 수출주력품에 대한 선진국의 수요가
많아져야 한다.

환율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선진국 수요는 없는데 수출을 무리하게 계속하면 수출채산성이 떨어진다.

원화절하론자들은 엔화 등락에 따라 일본기업들이 상품가격을 조절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일본기업들은 엔고현상이 기승을 부리던 95년 한국에서는 수출붐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일본의 수출가격이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경제는 상당히 좋았다.

그때 엔고현상이 갑자기 일어났다.

일본기업들은 수출에 대한 수익성을 희생하고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수출가격을 올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소니, 도요타, 미쓰비시 등은 모두 95년말 수익성이 악화됐다.

지금 일본경제는 상당히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엔화가 떨어지고 있다.

일본기업들이 어떤 선택을 할까.

지금은 기업들이 수익성을 더이상 희생시킬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격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엔저는 한국수출경쟁력에 위협이 되지 않으며 원화 절하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반면 원화절하에 따른 부작용은 크다.

현재 제조업체들은 치열한 경쟁, 공급과잉 등으로 비용이 높아져도 소비자
가격을 올릴수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원화절하로 수입부품가격이 높아지면 이들은 수익성에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원화절하가 수출진착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경제전체의 수익성만
악화시킨다는 얘기다.

3일 정부가 추가적인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소비자내구재나 아파트 구입, 시설재, 설비투자 등에 대한 정부 지원과
통화량 공급이 주요내용이다.

정부가 이제 내수소비쪽으로 정책을 돌렸다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신호다.

한국에는 과소비가 있는게 아니라 과투자가 있다.

따라서 소비를 진작하는게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옳은 방향에도 불구하고 이런 조치가 효과를 거두기는 힘든 상황
이다.

실업이 늘어나고 임금이 줄어드는 판에 소비는 늘어날수 없기 때문이다.

통화량을 늘리는 것은 어떤가.

이는 통화가 잘 돌아서 경제부문, 부문에 공급될때만 효과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통화공급을 늘려도 은행으로 들어간뒤 시중에 풀리지 않는다.

5대재벌 이외에 대부분의 기업은 대출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통화공급분이 경제 부문, 부문으로 들어가려면 적극적인 여신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지금은 통화량을 늘려도 효과를 볼수 없다.

지금 한국에는 2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된후에라야 3일 발표한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볼수 있다.

2가지 문제란 첫째, 기업부문의 신용붕괴, 둘째, 금융부문에서의 재무구조
악화다.

한국의 경우 시장원리가 상당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기업의 재무구조가 건전할수록 더 불리하다.

건전한 기업은 대출하려면 저당 잡히고,높은 금리를 내야 한다.

반면 법정관리나 협조융자, 워크아웃대상으로 지정된 기업은 시중금리보다
훨씬 싼값에 저당도 없이 자금지원을 받는다.

병들어 아픈 기업이 건전한 기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가 너무나 잘못된 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건실한 기업을 도와주지 않고 병든 기업만 적극적으로 협조융자했기 때문
이다.

이런 정책은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

그리고 난후 한국정부는 적극적으로 은행을 지원, 재무구조를 개선시켜 줘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 납세자들은 부담을 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조속히 실행해야 한다.

이렇게 정부가 은행의 구조를 재구축하고 나면, 은행은 건전한 기업에
건전한 방법으로 대출할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이런 정책을 시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실업문제인 것으로 알고 있다.

십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기업과 은행의 신용붕괴가 지속된다면 약한 기업만 부도나는게
아니라 건전한 기업마져 부도가 난다.

결국 실업문제는 악화될수 밖에 없다.

예산중 일부는 실업대책마련에 할당돼야 한다.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2가지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

첫째, 최선의 시나리오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기업신용붕괴를 막고, 나아가
재무부문, 금융부문 재건을 위해 과감한 개혁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럴경우 내년에는 경제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그래도 마이너스 성장과 불경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책을 지속한다면 금융위기가 다시 발생할 것이다.

이것이 두번째,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렇게 되면 실물경제에 상당히 악영향이 오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지출을 늘릴수 밖에 없다.

결국 인플레가 발생하든지 환율이 무너지게 된다.

이제 정부의 과감한 개혁정책을 기대한다.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려올 것이다.

나를 포함한 외국인투자자들은 한국의 장기전망에 대해 아직도 낙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정리=노혜령 기자 hr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