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프랑스 국정을 주도하던 콜베르가 상인들을 불러모아 정부가 무엇을
해주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상인들은 "우리를 그저 내버려 둬 주세요(laissez faire)"라고 대답했다.

"자유방임"이라는 단어는 여기서 비롯됐다.

우리사회에서는 자유방임이라는 단어가 "방종"이라는 단어와 묶여 부정적
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해석의 틀에서는 순수한 자유주의와 동의어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시장경제는 시장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창의를 바탕으로 자유 경쟁을 할 수 있게 하고, 진출입이 자유로우며,
외국인들도 국경없이 자유롭게 드나들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서 간섭하면 "노예의 길(Road to Serfdom)"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폰 아이예크의 주장이다.

밀튼 프리드만이 말하는 "자유로운 선택(Free to Choose)" 또한 자유야말로
시장경제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임을 강조 하기 위한 것이다.

요즘 세계은행이 작은 고민거리로 냉가슴을 앓고 있다.

6월초 워싱턴을 방문한 김대중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했고 미국 정치인들은 이에대해 지대한 관심과 환영을
표시했다.

이에 고무된 한국정부가 세계은행에 대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제로
국제세미나를 열자고 제안한 것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오는 11월에 열리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시기가 내년 2월로 연기된 것은 물론 주제도 그대로 유지될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국제세미나인 만큼 중국이 주요 참가국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
세계은행의 생각이지만 한국이 제안한 주제로는 중국을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체제상 아직까지 공산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이 "민주주의"라는 용어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중국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그 앞에 "사회주의적
(Socialistic)"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불완전한 형태의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도 참가를 꺼려하는 또 다른 이유다.

고심 끝에 주제를 "민주주의와 경제개발"로 바꿔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
세계은행의 제안이다.

세미나를 열자고 제안하려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신과 혼선
없는 개념정립을 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발표하는 대외 공표자료를 보면 아직도 완전한 형태의
시장경제를 추구할 의사가 있는지 의심을 살 만한 요소가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민주적 시장경제(Democratic Market economy)"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다.

김대통령이 묘사한대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표현은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다.

그러나 시장경제에 "민주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놓으면 원래 정부가
의도한 뜻과 전혀 다른 뜻으로 변질된다.

민주적이라는 수식어가 완전한 형태의 자유시장경제를 제한하는 요소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라는 올가미 때문에 시장을 그냥 자유롭게 내버려 둘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이 사회주의를 의식해 시장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것과 똑같은
맥락이다.

시장경제를 추구할 의사가 진정 있다면 시장을 그냥 내버려 두자.

그러면 자유시장경제가 제 기능을 할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

중상주의시대 프랑스인들에게서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양봉진 < 워싱턴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