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채권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낙하 속도와 낙폭이 모두 기록적이라는 게 시장관계자들의 말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계속돼온 투매열풍은 최근 러시아 사태로 더욱
가속을 받는 형국이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등 남미 주요국들의 국채가격은
지난주 내내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려왔다.

베네수엘라 국채가격은 지난주초 80.36%에서 24일에는 56.38%까지
내려섰다.

멕시코 국채가격도 90.48%에서 82.76%까지 하강했다.

하지만 이같은 헐값에도 불구하고 구매세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직 투매 만이 있을 뿐이다.

라틴계 금융기관인 뱅코 산타데르 산하 뉴월드 인베스트먼트의 해리
하리하난 수석 애널리스트는 "신흥시장의 투자자들이 러시아에서 떠안은
손해를 상쇄하기 위해 남미 자산을 팔아치우고 있다"며 "지난 94년 멕시코
페소위기 때조차 이같은 투매는 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사실 94년 당시만 해도 세계 금융시장 상황이 괜찮았던데다 원자재
가격도 강세를 보이는등 주변정세가 뒷받침을 해줬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제어장치가 없고 악재만이 켜켜이 쌓여있다.

메릴린치의 신흥시장 채권전략가인 조이스 창도 "정크본드만 전문적으로
투자해오던 투자자들조차 요즘은 개도국이 발행한 채권을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권가격이 폭락하면서 중남미국등 개도국들의 해외자금 조달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나 기업을 막론하고 채권 신규발행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외국자본으로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삼아온 중남미 경제에 적색경보가
켜진 셈이다.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미국 국채와 베네수엘라 국채간 금리차는 무려 10%포인트까지 벌어졌다.

11년만의 최대격차(마이클 페티스 베어 스턴스 이사)다.

따라서 채권을 발행해 재정적자를 메우려던 정부의 예산정책이 무산되면서
평가절하 압력도 가중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내년에도 30억달러의 채권 발행 계획을 세워두고 있지만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해졌다.

이밖에 아르헨티나가 내년 예산중 85억달러, 멕시코와 콜럼비아가 각각
15억달러 씩을 채권을 발행해 조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채권 폭락으로 지불해야할 고금리는 앞으로 이들 국가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내년에 가더라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개도국 채권들이 아시아에 이은 러시아 사태등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고 평가한다.

< 김혜수 기자 dearso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