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한국인 개개인은 똑똑하고 유능하지만 모아 놓으면 무력하고
무능해진다고 한다.

이 말은 한국인은 단결심이 부족하다는 말과도 통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 모습의 단면일 뿐이다.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 각자의 총화보다 커질수 있는 한국인의 집단적
능력을 간과한 것이다.

한국인의 집단의식은 집단의 운명을 자기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기 한몸 대의를 위해 기꺼이 버릴 수 있는 희생정신을 낳았다.

이러한 희생정신은 국가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위기에서 국가를 살리는
원동력으로 작용해온 것이다.

열강이 총칼과 함포를 앞세우고 이 땅을 유린하기 위해 혈안이 됐던
19세기 후반 국가적 위기가 한국인들에게 목전의 현실로 절실히 인식되면서
한국의 조야 각 계층으로부터 치열한 국권수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위기극복 노력은 오늘에까지 이르는 한국역사를 결코 비극의
역사만으로 그치게 하지 않은 중요한 요인이 되었고 그 밑바탕에는
한국인의 집단의식이 흐르고 있다.

20세기의 마감을 앞둔 우리는 19세기 후반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있다.

총칼과 함포라는 무력 대신 냉엄한 경제논리를 앞세운 주변국들이 우리의
입지를 좁히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가 루블화 표시 외채의 90일간 모라토리엄 선언과 함께 루블화를
33.6% 평가절하함으로써 일본의 엔화가치 속락및 중국의 위안화 불안을
부추겨 자칫 세계금융시장 전체를 공황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커졌다.

가까스로 외환위기를 벗어난 우리로서는 제2의 환란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게됐다.

총칼과 함포를 앞세운 싸움에서는 군사력 비축에 따라 싸움의 우위가
가려지지만 소위 경제전쟁에서는 외환보유고의 확충여부에 따라 국가의
흥망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세기 후반 열강의 침투에 맞서기 위해 갑오경장 광무개혁 등이 정부측에
의해 주도되고 국민들 사이에서는 항일의병운동 애국계몽운동 등이 일어난
것처럼 지금도 정부와 국민이 합심해 경제전쟁을 슬기롭게 치러나가야 할
것이다.

또다른 전쟁에서 이기는 길은 국민 개개인의 양보와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지금의 고통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데 있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