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화 평가절하 사태로 환투기 규제론이 다시 비등하고 있다.

특히 홍콩달러가 아직 투기 세력의 공격을 받고 있는 중이어서 투기규제에
대한 목소리는 더욱 절박하다.

모하메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18일 또다시 포문을 연것은 물론이고
인터넷에 개설된 루비니교수의 "아시아 위기" 홈페이지에는 외환거래 규제에
관한 기사와 논문들이 잇따라 게재되는 등 논쟁이 재연되는 모습이다.

사실 국제금융시장에서 환투기가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시아 환란 이전에도 92년의 파운드화 폭락, 94년의 멕시코 페소화 폭락
등에 환투기가 직.간접적인 요인이 됐다.

뿐만 아니라 환투기는 1년 3백65일 쉼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24시간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율 전쟁의 전사들 즉,환투기 자본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헤지 펀드들이다.

작년 9월 결성된 헤지 펀드협회(HFA)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에는
1천2백여개의 헤지 펀드가 활동중이며 그 자산규모는 1천1백80억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헤지 펀드가 환투기의 대명사가 된 것은 지난 92년의 파운드화
위기때부터였다.

당시 조지소로스의 퀀텀펀드를 필두로한 헤지 펀드들은 영국 파운드화
옵션을 집중매각, 결국 파운드화 가치를 끌어내리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불과 수주만에 10억달러가 넘는 이익을 챙겼고 유럽환율체제
(ERM)를 흔들었다.

이들 헤지 펀드외에 선진국의 대규모 투자은행과 연기금, 뮤추얼 펀드 등
기관투자자들도 환투기의 주요 세력이다.

이들 서방 기관투자자들의 자산규모는 무려 20조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물론 이 자산이 모두 환투기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만 환투기에 투입된다 해도 그 위력은 엄청나다.

더우기 투기세력과 중앙은행이 싸우면 중앙은행이 반드시 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엄청난 후유증이 따르는데다 국내경제에 주는 충격 때문에 중앙은행의
전술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환투기 세력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찍부터 제기돼 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인스 토빈이 대표적인 규제론자다.

그는 "환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외환거래에 세금(일명 토빈세)을 부과하자"
는 방안을 제시했다.

외환거래 비용을 높여 환투기의 "기대수익"을 떨어뜨리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 방법은 전세계가 다같이 채택하기 전에는 얼마든지 세금회피가
가능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대신 많은 경제학자들은 지난 90년대초 칠레가 채택했던 핫머니
규제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당시 칠레는 단기외자도입에 1.2%의 세금을 물리는 한편 해외투자자금에
대해서는 투자액의 30%를 1년간 무이자로 칠레은행에 예치토록 의무화해
외환위기를 막았다.

지난 7월 홍콩당국이 외환기금을 홍콩은행들에게 지원하면서 해외인출과
투기세력에 대한 대출을 금지시킨 것도 칠레식 외환규제를 원용한 것이고
대만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외환위기를 비껴갔다.

물론 환투기 규제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카고 학파의 태두인 밀튼 프리드먼은 대표적인 환투기 옹호론자이다.

그는 "환투기세력은 투기대상 통화가 낮을 때 사들이고 높을 때 매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환율안정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옹호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사태를 계기로 환투기 규제론자들
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