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발 위기론"이 결국 현실화되고 있다.

17일 러시아의 루블화 평가절하와 외채 지불중단(Moratorium) 조치는 국제
금융시장에 핵폭발과 같은 파괴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동유럽과 독일 등 러시아 주변국들엔 주가폭락 등 깊은 충격이 와
닿고 있다.

러시아 사태가 남미와 아시아로 번지며 세계 금융시장 전체를 공황으로
몰고갈 가능성도 크다.

이날 전세계 주가가 대폭락세를 보인 것도 이런 우려감을 반영한 것이었다.

경제 뿐만 아니라 세계정치의 대격변도 우려된다.

오는 2000년 대선을 앞둔 러시아 정치의 폭발적 후유증은 지난 91년 구소련
붕괴 이후 최대의 예측불허적 상황을 예고하고 있다.

<> 러시아의 조치내용 =세르게이 두비닌 러시아 중앙은행총재는 17일 현재
달러당 6.3루블인 기준환율을 9.5루블로 절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같은 평가절하폭은 지난주말 조지 소로스등 전문가들이 말해 왔던
15~20%의 절하폭보다도 크게 높은(33.68%) 것으로 금융계에 놀라움을 안겼다.

외채에 대한 지불중단 조치는 더욱 큰 충격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날 루블화 표시 외채(GKO)에 대해 90일간 지불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루블화 표시외채란 러시아 정부가 발행한 국채(GKO)중 외국인이 소유한
것을 말한다.

러시아는 현재 2천5백60억루블의 국채를 발행해 두고있다.

이는 달러로 4백10억달러.

국제금융계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가 발행한 GKO중 외국인 소유분은 대략
30%선인 1백20억달러다.

그러나 이날 조치는 4백10억달러의 GKO와 1천2백60억달러 외채 전체에 대한
지불중단이나 다를 바 없다.

러시아 정부는 그동안 이들 GKO에 대해 만기구조 개편 작업을 진행해 왔으나
국채 금리가 무려 2백19%(15일 현재)까지 치솟으면서 작업을 중단한 상태다.

<> 국제금융시장에 미칠 파장 =러시아 정부의 이날 모라토리엄 선언은
지난주 인도네시아 정부의 지불중단과 더불어 국제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몰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이 2백26억달러를 지원키로 약속하는 등 국제적
협조융자도 한창 논의되던 중이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국제협조체제의 실패로 기록될 것이 분명
하다.

국제금융질서에 무정부적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또 인도네시아 사태및 홍콩달러의 페그제 붕괴 우려등과 맞물려
국제금융계의 신용질서를 송두리째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중국 증시가 폭락하고 엔화는 달러당 1백50엔을 목전에 두고 있는
형국이어서 러시아와 아시아는 이미 상호 불안을 촉발하는 악순환의 덫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 유럽경제에 미칠 영향 =러시아 사태는 당장 러시아의 주변부이며 체제
전환국들인 동유럽에 충격을 주고있다.

독립국가연합(CIS)은 물론이고 체코 유고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이 1차
타격권이다.

더욱이 이 지역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해 왔던 독일경제의 예상되는 부실은
유럽전체로 부실 도미노를 수출해갈 것이 확실하다.

독일 마르크가 사실상 유럽의 기축통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의 주변주 국가들이 제2의 타격을 받는 것은
불문가지다.

벌써부터 일부 비관적 분석들은 유럽에서도 아시아적 상황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해 왔다.

일본이 저금리를 기초로 아시아의 버블을 키워 왔듯이 독일 역시 장기
저금리로 유럽의 버블을 키워 왔고 파열시점이 다가왔다는 지적이었다.

비관적 분석가들은 이날 러시아 사태로 내년에 출범할 예정인 단일통화
"유러"도 물건너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본을 축으로 한 아시아와 독일을 축으로 한 유럽이 모두 함몰하고
만다는 가공할 "세계 공황 시나리오"인 셈이다.

< 정규재 기자 jk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