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한국화가 박행보씨의 최근 작품은 목가적 자연풍경으로 가득 차있다.

검푸른 산자락에 걸려있는 구름, 단풍이 무르익은 산을 배경으로 한가롭게
밭을 갈고 있는 농부,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 그 숲속에 자리잡은 적막한
산사.

박씨는 한국 남종화를 주도해온 허백련 화백의 제자로, 오랫동안 남종화가
갖고 있는 운치와 멋을 담아내는데 충실해왔다.

그러다가 얼마전부터 스승의 화풍위에 자신의 독자적 색깔을 입히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거친 맛을 내는 닥종이위에 불규칙하게 그려지는
필선과 원근법을 배제한 단순한 구성이다.

거기에 기하학적인 선과 면에 의한 화면 분할, 화강암 표면같은 질감도입
등의 방법으로 전통 회화에 현대적 미감을 접목시킨 새로운 조형어법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734-0458)에서 오는 23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에선 이같은 그의 작품경향을 한 눈에 볼수 있다.

출품작은 "달마산 미황사" "풍정" "겨울의 문턱" "한촌" "무등산"등
근작 30여점.

10~20호크기의 소품에서부터 1백호가 넘는 대작까지 고루 내걸었다.

그가 그리는 대상은 광주인근의 자연이다.

하지만 작품속에 나타난 풍경은 자연을 그대로 모사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해석하고 정제해낸 "그만의 풍경"이다.

세부보다는 전체를, 외형보다는 생각을 더 깊게 집어넣은 주관의 세계다.

치밀하게 분할된 화면을 엷고 고운 담채로 채워넣은 그의 작품은 보는
이를 서정과 격조가 어우러진 독특한 산수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호남화단의 대표적 작가인 박씨는 22회, 23회 국전에서 문공부장관상과
국무총리상을 받았고 80년 국전추천작가 및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지냈다.

< 이정환 기자 jh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