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기상이변과 물난리는 당장 우리 경제에 깊은 시름을 안겨주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내년 이후의 식량수급 사정은 또다른 걱정꺼리가 아닐수
없다. 농림부가 이례적으로 국내 식량수급에 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에서도 알수 있듯이 식량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비상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사태가 예사롭지 않다.

물론 지난 2년간의 연속 풍년으로 당장은 수급에 차질이 없으나 올해는
집중호우에다 벼 이삭이 패기 시작하는 시기에 날씨가 계속 좋지 않아 쌀
수확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요즘같은 날씨가 이어지면 올해
쌀 생산량은 당초목표보다 14만~28만t 정도 줄어든 4백60만~4백73만t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요즘의 기상과 호우 피해상황이 최근 10년
사이 가장 심각한 흉작을 기록했던 95년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되면 곡물수입을 늘릴수 밖에 없는데 문제는 국제곡물시장의
수급전망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양쯔강 유역의 물난리로 중국에
식량부족사태가 벌어지면 국제곡물시장은 혼란에 빠질게 뻔하다. 세계 쌀
교역량은 연간 2천3백만톤에 이르고 있지만 12억 인구의 중국이 자체수요의
15%(2천만톤)만 수입해도 세계 쌀시장은 거덜날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양곡 총수요량 2천만톤 가운데 사료용 옥수수와 밀 콩 등
1천4백만톤을 수입하는 등 곡물의 해외의존도가 매우 높다. 따라서 미리미리
국제곡물시장의 수급전망을 바탕으로 치밀한 수급안정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의 세계 식량위기와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에서의 농업생산 보조금에 대한 엄격한 제한은 재고돼야 한다는
점이다. 당초 보조금 규제조치는 세계 농산물시장의 수급 안정에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주요 곡물생산국들의 힘에 눌려
강대국들의 논리대로 시행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로 인한 농작물 생산량의 감소는 심각한
식량위기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으며 내년이후 세계 곡물시장에서 그 위기는
구체화될 공산이 크다. 물론 세계 식량수급상황에 대해서는 식량수출국
중심의 낙관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생산의욕 감퇴와 수자원 환경 등의
이유로 생산이 크게 제한돼 식량부족이 우려된다는 비관론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세계 인구 57억 중 7억 이상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데도 몇몇
곡물메이저들의 수출가격만을 생각해 보조금정책을 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비인도적이다.

IMF사태로 가뜩이나 사회전반이 뒤숭숭한데 식량위기까지 겹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번 기상이변에 따른 농작물 피해를 계기로 정부는 물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식량안보에 대한 보다 높은 경각심을 가졌으면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