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새한국창조 21] 국내외 석학 등이 제시하는 새패러다임 (3)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 아시아적 가치의 재조명 ]]]

    최근 크레디트스위스 퍼스트보스턴(CSFB.금융그룹) 주최로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투자 컨퍼런스"회의장.

    미국내 대표적인 아시아통으로 꼽히는 리처드 홀브루크 전 미국무부 동아태
    담당차관보(현 CSFB그룹 부회장)는 소위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간 전 세계를 풍미하던 소위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라는 수사란
    무엇인가.

    그 뒤에는 명확함을 꺼리는 연기자욱한 스크린, 끼리끼리 자본주의(crony
    capitalism), 이중규범, 부패 등이 도사리고 있다"

    홀브루크의 주장은 한마디로 "아시아는 더이상 없다"는 것.

    또 다른 토론자인 폴 크루그만 미국 MIT대 교수는 홀브루크의 주장을
    반박했다.

    크루그만은 "정실자본주의"가 현재의 아시아 경제위기를 태동시킨 한
    요인이었음을 인정하고 "그러나 어느정도의 연고주의란 불가피하다.

    하루아침에 아시아가 스위스로 변할수는 없다"는 요지의 정상참작론을 폈다.

    "아시아 경제는 더이상 나빠지지 않는다. 3년안에 회복될 것이며 특히
    한국과 태국이 그렇다"고 주장하면서.

    이날 토론의 하이라이트는 논객들이 과거 자신의 견해를 뒤집는 주장을
    폈다는 점이다.

    이는 곧 "아시아적 가치"를 둘러싼 논쟁이 그만큼 복잡하고 다각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폴 크루그만 교수는 아시아 경제붐이 한창이던 지난 94년 "아시아 기적은
    끝났다"는 비관론을 폈던 학자며, 리처드 홀브루크야말로 과거 10여년동안
    누구보다도 아시아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던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적 가치"는 이제 세계경제학자들간의 거대한 담론
    (discourse)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과거 20여년간 이지역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경제성장
    에서 유래한다.

    아시아 각국은 80년대 이후 연간 7~9%의 고도성장을 지속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경제학자나 금융전문가는 물론 IMF나 세계은행에서도 아시아의 경제기적을
    칭송했다.

    특히 아시아 진영내에선 경제기적의 비결을 독특한 문화적 배경에서 찾으려
    한 시도들이 있었다.

    리콴유(이광요) 전 싱가포르총리가 대표적이다.

    리콴유가 강조했던 아시아적 가치는 가족적 유대감, 권위에 대한 복종,
    검약정신, 보수주의 등으로 요약된다.

    리는 이같은 문화적 토대위에서 아시아만의 독특한 자본주의 모델이
    가능하다고까지 주장했다.

    일련의 서구학자들은 바로 이같은 "경제모델론"을 토대로 현재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요인이 "아시아적 가치"때문이라고 태도를 바꾸었다.

    유교 문화는 정실자본주의, 유능한 관료는 부패한 관치경제,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는 비합리주의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미덕"이 현재의 "악덕"으로 돌팔매질 당하는 격이다.

    그러나 "아시아적 가치"의 또다른 옹호자 프란시스 후꾸야마교수(미국 조지
    메이슨대학)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모델론"이란 리콴유와 마하티르 말레이시아수상 등이 독재통치
    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만들어 낸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후꾸야마는 아시아만의 경제모델이 존재하지 않듯, 아시아적 가치가 현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정책의 실패일 뿐 문화적 원인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서구진영의 비판은 보다 직접적이다.

    "아시아 각국이 비교적 단일한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아시아적 가치의 실체"(제임스 뷰캐넌박사.노벨경제학상 수상자)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뷰캐넌은 "아시아는 합리적 계약관계보다 개인적 친소관계를 중시해왔다"며
    "이같은 특징이 경제위기의 원인이 됐고 마찬가지로 단기간 안에 경제회복이
    이루어지기 힘든 이유"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한 반론은 아시아적 가치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데서 출발한다.

    "정실주의는 물론 아시아 경제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금융부문에 미친 악영향은 특히 컸다.

    그러나 이것들이 아시아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19세기말 미국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있었고 남미에서도 유사한 배경으로
    위기가 발생했다.

    부패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이다"(도널드 에머슨
    위스콘슨대 교수).

    즉 문화적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이를 경제시스템과 연계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는 뜻이다.

    아시아적 가치를 둘러싼 논쟁에서 한국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연고주의, 작동하지 않는 관료주의, 부패, 장막뒤에서의 거래 등등은
    국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관행이다.

    그러나 이런 관행이 경제시스템을 망가뜨린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미지수다.

    역으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관행이 성행했던 것은
    아닐까.

    과거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을 가능케 했던 양대 축, 즉 기업의 차입경영과
    관주도의 경제발전방식이 현 상황에서 한계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응하지 못한 정부와 기업은 생존조차 불가능하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시아적 가치", 나아가 "한국적 가치"의 용도폐기를 주장
    하는 근거는 될 수 없다.

    "가치엔 언제나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으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이
    발현되거나 강조되기 때문"(김중웅 현대경제사회연구소장)이다.

    "한국은 IMF관리체제하에서 당분간 서구적 단기대응방식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시아와 한국기업의 강점이었던 장기비전에 의한 기업경영 및
    경제발전방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영국 런던비즈니스 스쿨 던솔교수)는
    주장도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남겨진 과제는 아시아적 가치에 내재된 순기능을 살려 한국의 경제
    개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이는 곧 뒤틀려 있거나, 아예 없는 시스템을 세워 작동시키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런점에서 "자본주의는 실제 서구사회의 문화나 가치와 큰 관계가 없다.
    자본주의엔 그저 자본주의의 가치관이 있을 뿐이다. 법의 지배나 공공의
    이익을 존중하는 정신 등은 자본주의의 필수적인 요소일뿐 서구 고유의
    가치라고는 할 수 없다"는 폴 크루그만 교수의 주장은 곱씹어볼 만한 대목
    이다.

    < 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3일자 ).

    ADVERTISEMENT

    1. 1

      [기고] 바이오 혁신 R&D가 뿌리내리려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원주민의 독특한 문제 해결 방식을 소개했다. 숲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을 발견하면, 당장 쓸모를 알지 못하더라도 일단 챙긴다. 그리고 훗날 그 물건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공동체를 위기에서 구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를 ‘브리콜라주(bricolage)’라 불렀다. 이는 오늘날 바이오 혁신 기술의 방식과도 닮아 있다.바이오 연구 패러다임은 탐색과 학습을 통해 가능성을 발견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최근 연구의 중심에는 인공지능(AI) 바이오와 합성생물학, 바이오파운드리가 있다. 이들 분야는 불확실성과 탐색을 전제로 발전해 왔다. AI는 방대한 생명 데이터를 통해 가능성을 예측하고, 합성생물학과 바이오파운드리는 그 가능성을 실제 생명 시스템에서 빠르게 구현하고 반복적으로 검증한다.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 축적된 지식이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이어진다.문제는 이러한 연구 방식이 요구하는 환경과 우리의 제도 사이에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바이오 연구·개발(R&D)은 기획 단계부터 명확한 타깃과 활용 시나리오를 요구받는다. 그러나 바이오 연구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 상용화가 가능한가”, “활용 가능한 결과물은 무엇인가”를 먼저 묻는다. 이런 질문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지만, 혁신의 출발점에서 적절한 질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바이오 연구의 핵심 가치는 성공 자체보다 실패의 과정에서 축적되는 데이터에 있다. 어떤 가설이 왜 실패했는지, 어떤 조건에서 예측과 다른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다음 설계의

    2. 2

      [한경에세이] '완성형 인재' 키울 섀도 캐비닛

      정치 신인에게는 처음부터 ‘완생’을 요구하면서, 정작 그 경로는 철저히 개인의 고군분투에 떠넘기는 구조. 한국 정치의 뼈아픈 모순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선거철마다 각 정당은 앞다투어 외부 인재 영입을 외친다. 하지만 정작 집권 이후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는 늘 불분명하다. 선거용 정책은 넘쳐나지만, 정부를 능숙하게 운영할 ‘준비된 팀’은 보이지 않는다.우리는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위한 ‘완성형 인재’이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국정 운영 능력은 단기간에 얻을 수 없다. 행정부의 작동 원리, 입법부와의 상호작용, 예산과 정책의 연결 구조, 이해관계 조정 방식까지 두루 이해해야 한다. 국민 앞에 계획을 제시하고, 국회·행정부·기업·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를 조율하며 국가를 이끄는 능력은 훈련 없이 생기지 않는다.영국 등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발달한 ‘섀도 캐비닛’은 이 지점을 정확히 파고든다. 제1야당이 정부 각 부처에 대응하는 그림자 장관을 두고 상시로 정책을 검증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여기서 핵심은 ‘사람’을 키운다는 데 있다. 권력을 잡기 전에 미리 권력의 작동 방식을 다뤄보는 구조, 즉 미래의 국정 운영을 책임질 사람을 훈련하는 실전에 가까운 제도다.물론 대한민국은 대통령제 국가이므로 제도의 외형은 다르다. 그러나 제도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키우고 정책을 점검하는 구조마저 포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권이 바뀔 때 인적 교체 폭이 큰 대통령제일수록 선거 이후 인선이 아닌 ‘준비된 팀’을 상시 육성하는 시스템이 더욱 절실하다.한국형 섀도 캐비닛

    3. 3

      [특파원 칼럼] 앞뒤 안 맞는 트럼프의 투자 독촉

      “한국의 대미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를 이행하는 것입니다.”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갈라 행사에 참석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단상에 올라 이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 인하를 대가로 투자를 약속했으니 의무라고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 기업 관계자를 앞에 두고 투자를 ‘독촉’하는 것은 묘한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 지금까지 세계 각국은 투자를 유치하려고 노력했지, 독촉한 적은 별로 없다. 투자란 기본적으로 자발적인 선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韓 기업 상대로 투자 독촉만작년 초 한국 정부와 관계기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을 앞두고 한국의 대미 투자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강조하는 메시지 작성에 골몰했다. 2024년 한국이 대미 그린필드 투자(현지 설립 투자) 1위였다는 등의 통계가 여러 곳에서 활용됐다. 그러나 엉터리 수식에 기반해 발표한 상호관세는 이런 노력이 무의미해 보이게 만들었다.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미국에 투자를 많이 하다 보니 중간재 수출이 늘어난 측면이 있지만 트럼프 정부는 아무리 설명해도 ‘우리가 알 바 아니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지난달에도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쪽지를 꺼내 무역적자 수치를 보여줬다. 다시 한번 “중간재가…”라며 해명을 시도했지만 그리어 대표는 “(대미투자특별법 통과 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감정 없이 관세를 올릴 수 있다”고만 답했다.미국이 관세 협상을 통해 원하는 것은 결국 대미 투자다. 정부 측 자금이 들어가는 부분이 있더라도 궁극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