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방어의 둑이 무너졌다.

11일 달러당 1백47엔대가 붕괴된데 이어 인도네시아의 국가채무
지불정지까지 겹쳐 더이상 비빌 언덕이 없어졌다.

이대로 가면 달러당 1백50엔대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곧 1백55엔대를 넘어 1백60엔대로 치달을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사태가 아니더라도 엔화는 약세행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세를 돌릴만한 재료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선은 일본정부의 소극적 자세가 가장 큰 문제다.

획기적인 경제대책을 내놓을 것 같지 않다.

새정권이 영구감세와 추경예산 편성을 포함한 경기부양대책을 내놓았지만
새로운 것은 없다.

수치만 조금 손을 보았을 뿐이다.

이정도로 경기가 쉽게 살아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금융개혁도 지지부진하다.

가교은행(브리지뱅크)을 통한 부실채권 정리방안을 마련했지만 국회에서
심의조차 안되고 있다.

설사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별다른 효과를 기대하지 못한다는 게 외국
금융기관들의 반응이다.

"부실"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하고 정부의 입김도 개입될 소지가 많아
실제로 부실정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네시아의 지불정지가 터졌다.

인도네시아의 외채 1천3백74억달러중 약2백32억달러(98년말 기준)가
일본의 채권이다.

인도네시아가 국가채무를 갚지않을 경우 일본은 동반부실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친 꼴이다.

가뜩이나 아시아 경제는 막다른 길로 가는 모양새다.

홍콩은 투기세력의 집중공격을 받으며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있다.

중국 위안(원)화 절하가 앞당겨 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대만 싱가포르등 위기를 피해갔던 나라들조차 연일 계속되는 주가폭락으로
본격적으로 환란의 영항권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런 정황들을 고려하면 엔화는 "회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얘기가 된다.

11일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대장상이 "현재의 엔달러 환율은 적절하지 못한
수준"이라며 "엔 약세 저지를 위해 선진 7개국(G7)이 공동으로 시장개입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시장은 미동도 않은 것이 그 반증이다.

슈로더저팬의 이코노미스트인 앤드루 쉬플리는 "일본 정부의 자세가
소극적인데다 외부요인이 많아 엔화가 올 연말에는 1백60엔대로 폭락할 수
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ING 베이링의 분석가 리처드 제럼도 "가을이 오기 전까지는 엔화 하락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