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개 동한의 왕충이 지은
논형이 저작의 형태로는 최초라는 게 정설이다.

예정된 운명 즉 천명에 관해서는 오늘날에도 시비가 분분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지만, 어쨌든 확고한 천명관과 함께 운명학 탐구의 방법론을
여러 각도로 제시하였다.

그의 논의의 핵심은 오행(목화토금수)의 생극이론을 명의 추리에
적용하였다는데 있다.

십간과 십이지지를 명리적인 추명 혹은 산명에 직접적으로 응용하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위군의 이허중에서 비롯된다.

그는 년, 월, 일의 삼주(세 개의 기둥)를 이용하였다.

이후 송초의 인물인 서자평에 와서 오늘날의 사주(연월일시의 네 기둥)
개념이 확립되었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후대 사람들은 사주명리학을 일컬어 자평술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격국론의 연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연해자평은 송나라의 서자승이 서자평의
연구에 바탕하여 만든 주요저작이다.

명나라에 들어와 명리학은 그 발전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백미로 일컬어지는 백온유기의 적천수원주, 심효첨의 자평진전 등의 명저를
낳았다.

청나라 때 나온 주요 저술로는 진소암의 명리약언, 임철초의 적천수보주,
그리고 무명씨의 궁통보감 등을 들 수 있다.

모든 학문이 마찬가지이지만 과거에 토대를 둔 발전적인 창조가 없으면
그 학문은 퇴보하기 마련이다.

음양오행의 원개념도 오늘의 상황과 맥락에 맞추어 재해석되어야 하며 이는
역경 본래의 의미와 상통한다.

취길피흉을 위해 더 나아가 경세와 치국을 위해 역학이 이바지할 길은
무궁무진하다.

성철재 <충남대 언어학과교수/역학연구가 cjseong@hanat.chungnam.ac.kr>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