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수입선다변화 품목 추가해제 계획이 발표된 지난달 29일 마포에 있는
대우전자 본사 컬러TV 사업부엔 비상회의가 열렸다.

7월1일부터 21인치이상 25인치미만 일제 컬러TV 수입이 자유화에 된데 따른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제 정부의 보호막에 의존하던 때는 지났습니다.

그동안 충분히 준비를 해와 일제가 수입돼도 큰 피해는 없을 것입니다"

"일본업체들이 취약한 애프터 서비스(AS)분야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좀더 빠르고 신속한 AS체제는 제품 경쟁력을 높여줄 것입니다"

이날 회의에선 일제상품의 한국시장 침투를 효과적으로 막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만성적인 대일무역역조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78년부터 시행된
수입선다변화제도가 내년 여름이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기업들은 그동안 일제 수입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정부로서도 더이상 국내기업들만 보호해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수입선다변화제도의 폐지는 국내기업들엔 국내시장에서도 실질적인
무한경쟁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자만이 생존하는 정글에 팽개쳐진 것이다.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는 수밖에 없다.

살고 죽는 것은 전적으로 기업의 손에 달려있다.

윤종언 삼성경제연구소 기술산업실장은 "수입선다변화제도 폐지는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라며 "이제 정부에 기대던 시기는
끝났다"고 강조했다.

윤 실장의 말처럼 기업들이 살기위해선 스스로의 방어책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무기는 역시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자동차공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사실 일본자동차의 수입허용은 두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WTO(세계무역기구)체제 등으로 더이상 수입을 막을 명분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이젠 품질과 기술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도자기공업조합 이기정 부장은 "일본산 도자기 수입자유화는 일부
선발업체를 제외하고 중소업체들에 큰 타격을 주고 업계재편을 초래할
것"이라며 "중소기업도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업계는 그동안 나름대로 일본제품 수입자유화에 대비책을 마련해왔다.

기술개발 투자와 품질 향상에 힘쓰고 서비스 질을 높이는 한편 한국형
제품을 개발하는 노력등이 그것이다.

대우전자 김상우 TV기획팀장은 "국산가전제품의 경우 일본제품과 품질과
성능에서 큰 차이가 없다"며 일본제품의 수입이 허용돼도 큰 문제는 없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국내업계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국내 소비자들의 외제 선호 현상과
일본업체들의 덤핑수출 가능성이다.

무턱대고 일제를 좋아하던 시기는 지났지만 일부 계층을 중심으로 일제라면
무조건 사고보는 현상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전자산업진흥회의 한 관계자는 "과거 일본여행객들이 코끼리표 전기밥솥을
대거 사들여와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며 "일제 수입자유화로 이같은
사태가 재현될까 걱정된다"고 밝혔다.

이에대해 주부들의 입장은 보다 현실적이다.

일산에 사는 주부 김혜원(37)씨는 "IMF로 살림이 어려워진때 일제라고
무턱대고 사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품질이 좋고 값 또한
싸다면 장기적으론 국적을 따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엔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사게되리란 주장이다.

또 정진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수입선다변화에서 해제된 일본업체들이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해 수입자유화 초기단계에 덤핑 수출할 가능성이 있다"며
적절한 대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강현철 기자 hck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