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제12회 최고경영자 하계세미나가 19일 제주 신라호텔
에서 시작됐다.

오는 22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세미나에는 진념 기획예산위원장,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 강봉균 대통령경제수석 등 경제각료들이 연사로 참석해
정부의 개혁방향을 설명한다.

또 기업측에선 정세영 현대자동차명예회장과 윤윤수 필라코리아사장 등이
강사로 나온다.

존 다스워스 IMF서울사무소장, 데이비스 영 보스턴컨설팅그룹대표 등은
외국인의 시각을 들려줄 예정이다.

김우중 회장대행은 첫날 기조강연을 통해 "고용조정은 경기가 좋아진 뒤로
미루고 가능한한 실업발생을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MF위기극복과 기업인의 책무"를 연제로 한 기조강연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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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업은 외환위기와 IMF(국제통화기금)관리로 통칭되는 국가적 위기상황
을 극복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하는 동시에 경영상의 애로와 난관을
헤쳐가야 하는 이중적인 입장에 놓여 있다.

IMF관리체제에 들어간 지 반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우리 앞에는 많은
어려움이 놓여있다.

일단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고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한 공감대
또한 서서히 형성돼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기업이 IMF 극복의 주체가 돼야한다는 점이다.

과거 개발연대에도 기업은 왕성한 기업가정신과 희생적인 자세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내는데 주역을 했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우리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게 한 주인공이기도 했다.

초경쟁을 지향하는 국제사회의 변화 속에서 기업은 국제경쟁을 수행하는
주역으로서 새삼 그 위상이 확고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가 경제의 발전과 기업의 경쟁력이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기업인의 사회적 소명의식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우리가 직면한 국가적 위기가 우리 기업인들에게 또
한번의 헌신과 솔선수범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들은 지난 상반기에 2백30억달러 내외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며
외환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같은 성과는 기업의 자발적인 노력의 결과인 동시에 위기극복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IMF체제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안심할
단계는 못된다.

이번 금융위기 과정에서 목도했듯이 금융의 범세계화 파고 속에 놓여있는
우리 경제는 국제금융자본의 움직임에 따라 하루 아침에 총체적 파국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 냉엄한 국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안정된 외환관리 기반을 갖고 있지 않으면 대단히
위험하다.

현재 외환보유고가 기업보유 외화까지 합하면 사상 최대규모인 5백60억달러
에 이르고 있지만 이 정도만으로는 국제투기성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앞으로 제2,제3의 환란을 겪지 않으려면 최소 1천억달러 정도의 외환보유고
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하반기 중에 수출증대를 위한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배가된다면 연중 5백억
달러 흑자는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고 본다.

IMF체제 이후 우리에게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실업이다.

현재 1백50만명을 넘어선 실업인구가 계속 늘어나게 되면 무력감과 갈등
혼란 등으로 큰 사회불안이 일어날지 모른다.

경제는 물론 사회시스템 전체가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실업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업이
크게 늘면 중산층 몰락과 가족 해체라는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종국에는
기업들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경제성과 효율성을 내세우는 서양적 사고방식으로는 인원을 줄여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기업운영 방식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든지 고통을 분담하면서 실업발생을 억제하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불황기에는 고용조정 자체가 사회불안의 요소가 되어 결국
경제 전체에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이런 일은
경기가 좋아진 후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실직자 생계지원을 중심으로한 사후적 접근보다는 기업 부도방지와 가동률
제고, 그리고 경제활성화를 통한 근본적인 해결 대책이 모색돼야 한다.

현재 우리의 공장가동률은 60%대로서 1조달러를 상회하는 생산설비들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막대한 투자를 통해 만들어놓은 설비가 가동되지 못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도 매우 불행한 일이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 공장 가동률을 높여 나간다면 우리는 전체적으로
고정비의 경감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고용안정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미 발생한 실업에 대해서도 해외인력 송출 등 과거 우리의 경험을
살려 실현가능한 방안들을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기업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선 특히 금융기능의 복원이 시급하다.

이미 금융은 국제경쟁의 중요한 경쟁요소가 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원자재를 들여와 이를 가공해 수출해야 살아갈 수 있는 나라에서는
금융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현재 전경련에서는 중소기업에만 실시되고 있는 부채의 만기연장과 수출
금융을 향후 1년간 5대그룹을 제외한 모든 기업에 확대 실시하는 방안을
건의해놓고 있다.

또 금융경쟁력을 높이자는 목적에서 리딩뱅크의 설립을 추진하려고 한다.

이런 계획이 성사되면 외자를 포함한 장기자금을 기업에 공급해줌으로써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금리인하와 선진금융기법의 전수를 통해 우리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기업들이 넘어야 할 산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일본 엔화약세와 중국 위안화 절하압력이 커짐에 따라 수출가격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또 내년 이후 미국경제의 성장둔화와 유럽연합(EU)출범에 따른 EU 국가들의
긴축기조 유지가 전망되는 등 선진국시장마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상황만 하더라도 구조조정의 추진과 경기침체의 가속화 등으로 인해
잘못하면 기업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수도 있다.

하지만 향후 닥쳐 올 상황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선행되고 미리 마련된
대안을 가지고 대처해 나간다면 넘어서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

기업인들부터 자신감을 가지고 위기극복에 앞장서는 컨센서스를 만들자고
제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지난 시절 땀과 노력의 결실인 1조달러가 넘는 생산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근면하고 우수한 근로자도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기업인의 식지 않는 열정과 내일을 향한 소명의식이 있다.

헤겔은 한 시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켜 "시대의 의지"라고 표현했다.

지금 우리의 시대의지는 조속한 시일내에 경제위기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후대에게 고통의 멍에를 넘겨주지 않는 것이다.

기업이 일체된 노력을 보이고 정부의 지원과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된다면
우리경제의 앞날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 정리=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