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개혁파를 자처하는 한 고위관리는 외국의 신뢰를 얻어 내기 위해서는 "조건
없는 개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일례로 국가위기상황일 경우 자본거래를 규제할 수 있다는 외환거래법상의
최소한의 유보조항도 삭제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투쟁할 것임을 천명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외국인기피증(xenophobia)은 정도 이상이다.

가히 쇄국주의적인 성향이 강함을 부정할 수 없다.

일전 대통령께서 "국민과의 대화"라는 TV프로그램을 통해 "이제부터 국내
자본이냐 외국자본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국내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기술을 축적하고 세금을 잘내는 기업이면 무조건
환영해야 한다"는 세계화론을 주창한 것은 아마도 지나치게 한쪽으로 경도
되어 있는 우리의 의식구조를 바꾸기 위한 의도적 발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면개방론의 함정을 짚어 보지 않으면 안된다.

단지 이념적.추상적으로만 개방론을 들먹이지 말고 구체적으로 자문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포항제철이 외국자본의 손에 넘어가도 무방한가라고.

서방자본에 장악될 경우 포항과 광양은 전세계 여러곳에 널린 생산기지중의
하나일 뿐이다.

막말로 하청생산공장으로 전락, 값싸게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일만 맡겨질
뿐이다.

높은 이윤과 부가가치의 원천인 기술개발, 마케팅, 그리고 브랜드파워와
같은 노른자위는 모두 서방자본의 중추부가 담당하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지난 30년간 국민 모두가 피땀흘려 일궈온 우리의 산업자본이
서방의 금융자본에 의해 전략적 자유도를 상실함으로써 천왕봉을 눈앞에
둔채 하산하고 마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우리나라는 금융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할 준비가 너무도 부족하다.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 교수는 대외전진기지(enclave) 전략이 있었기에
한국 등 동아시아의 비약적 성장이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전면적으로 대외개방하기에는 산업의 경쟁력과 기술인력의 확보 그리고
제도적인 인프라가 너무도 불충분했기 때문에 국토의 일부분을 떼어내
대외전진기지로 육성한 전략이 효과를 거두었다는 평가이다.

마산수출자유지역, 보세창고지역의 지정을 통한 개방경제의 실험을 두고
한 말이다.

과거 실물경제의 시대에 우리가 고안하고 적용했던 대외전진기지의 전략은
오늘날의 금융경제시대에도 여전히 타당할 수 있다.

우리의 금융부문은 전면적인 개방을 맞이할 준비가 너무도 미비하다.

자본 기술 인력 제도 무엇하나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제약요건을 획기적으로 극복하는 방안으로 역외금융센터를 창설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아편전쟁 패전후 영국에 넘어갔던 주룽반도가 세계적인 금융센터 홍콩을
일구어 중국에 반환됐듯 우리도 서해안 공유수면을 떼어내 서방금융자본의
한판놀이터를 만들어 주는 방안을 생각해 봄직하다.

이찬근 < 인천대 교수 ckl1022@lion.inchon.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