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주현 기자 현지를 가다 ]

인구 2억, 아시아 이슬람의 맹주다.

서남아시아를 등에 업고 가슴으로는 태평양을 품고 있다.

이런 지정학적 여건과 미국의 아시아 전략을 감안하지 않고는 수하르토의
장기집권과 이 나라 경제를 이해할 수 없다.

동남아 화교 문제도 겹쳐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수카르노하타 인도네시아 국제공항을 빠져나온다.

"루피아 노(No). 유에스 달러 OK".

택시에 오르자 수염이 까슬한 운전사가 요금은 달러로만 받겠다며 승객의
다짐부터 받는다.

루피아의 최근 환율은 달러당 1만5천.

작년 7월전만해도 달러당 2천루피아였다.

한때 1만7천루피아까지 갔다가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불과 1년만에 휴지로
변했다.

치솟는 환율은 정상적인 상거래를 마비시킬 정도다.

맘팡지역의 수입상품점 종업원 빅토르(21)는 아침 일과를 가격표 바꾸는
것으로 시작한다.

"환율이 매일 올라가니까 날마다 갈아붙여야죠.

손님들이 말이 많지만 어쩔 수 없어요"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밤이라기엔 아직은 이른 시각인 저녁 8시.

은행과 기업체 본사, 호텔들이 밀집해 있는 땀닌 슈디르만 거리에는
가로등만 밝을 뿐 인적이 끊어졌다.

"작년만 해도 밤늦게까지 북적댔는데 이제는 혼자 걷는 게 무서울 정도"
라고 이 거리에서 노점상을 하는 파린 야촐라부트르씨는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아직 혼란 상태였다.

지난 25일에야 4백30억달러의 지원금을 두고 IMF와 겨우 합의를 만들어
냈을 정도다.

위기가 닥치고 근 1년만이었다.

미국은 사태가 악화되자 미련 없이 어제의 동지 수하르토를 내쳤지만 아직
하비비의 인도네시아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경제위기와 폭동의 상처는 뼈속까지 곪게 만들고 있었다.

주식인 쌀값만도 지난해 10월 이후 1kg당 최대 4천루피아로 치솟았다.

환란전에 비해 4배나 올랐다.

올해 물가 상승률은 75%.

자카르타 최대 백화점인 메트로 플라자는 매출이 40%나 줄었다.

더우기 외국투자가들은 진출은 커녕 아직도 "탈출중"이다.

그나마 수출로 버티는 기업들도 연 50%가 넘는 금리에 숨을 헐떡인다.

세계 4, 5위를 다투는 많은 인구가 만들어내는 실업자수는 정부가 통계조차
내지 못할 정도다.

연말이면 1천5백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자동차가 신호등에 멈추어 서면 대여섯명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저마다 신문이나 음료수를 내밀며 자기물건을 사달라고 졸랐다.

"우리회사가 망하지나 않을까 하는게 요즘 제일 걱정"이라고 갈마이 무역에
근무하는 노비따 뜨리씨는 말한다.

문제는 인도네시아 경제위기를 경제논리만으로는 풀 수 없다는 데 있다.

수하르토 전대통령에 대한 처리문제는 자칫 심각한 분열과 또 하나의
충돌을 몰고 올 수 있는 화약고다.

인도네시아 해법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가 "BCA은행사태"다.

BCA는 인도네시아 최대은행.

지난 폭동때 시작된 예금인출사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소유주가 화교재벌과 수하르토 전대통령의 아들 딸들이라는 게 이유다.

BCA은행은 인도네시아 최대 그룹인 삼림그룹에 속해있고 이 그룹은 중국계
임소령의 소유다.

여기에 수하르토 전대통령의 아들과 딸이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중국계에 대한 반감과 수하르토 전대통령 일가의 부정부패 사건이 어떻게
결말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예금인출사태를 장기화시키고 있다.

IMF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관리들조차 마찬가지다.

"인도네시아 사태에 대한 책임의 절반은 IMF에 있다"고 외국인투자 유치를
책임지고 있는 함자 하스 투자장관조차 내놓고 말했다.

사실 IMF요구에 의한 유류가격인상이 인도네시아 폭동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했다.

지식인들도 IMF에 대한 극단적 반감을 갖고 있다.

"그 사람들은 다운당한 권투 선수를 계속 두들겨 패는 데만 열중해 있다"며
디딕 라키비니 인도네시아 금융경제발전연구소장은 IMF를 비난했다.

물론 반성의 목소리도 없지는 않다.

IMF를 맹령히 비난했던 함자 하스 장관은 "사실 석유와 가스만 팔아도 연간
1백50억달러는 번다는 손쉬운 생각에 잡혀 있었다"며 정책 실패를 시인했다.

수하르토는 물러났지만 그가 구축한 독점 경제체제는 아직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을 밟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다.

고속도로 택시회사 은행 백화점, 심지어 사먹는 생수까지 모두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만든 것들이었다.

인도네시아는 태국과는 분명 뚜렷한 명암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국은 한때의 동지 인도네시아를 어디로 끌고갈 것인가.

< for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일자 ).